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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직원을 웃기는 쉬운 방법

입력
2015.0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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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근원은 고용 불안

직원존중 가치 깨달아야

인간력 주목하는 자본으로

불행시대다. 해가 바뀌었건만 불행뉴스는 반복된다. 한숨, 짜증은 무차별적이다. 누구도 비켜설 수 없다. 오늘은 버텨내도 내일은 모르겠다. 왜 괴롭고 힘들며 아플까? 가지는 많지만 뿌리는 하나다. ‘일’이다. 고단한 호구지책 탓이다. 고용불안이다. 일자리가 흔들리니 생활인도 허덕인다. 해결책은 의외로 쉽다. 장기ㆍ안정적인 고용확보다. 결국 기업에 달렸다.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대전제는 수익확보다. 고용안정과 이익증대만 확인되면 못할 건 없다. 정부정책은 채찍과 당근용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만병통치약이다. 세대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불행을 통제하는 최대 장치다. 개별가계의 갈등관리와 사회전체의 비용절감에 직결된다. 길게는 사회ㆍ경제적인 피폐ㆍ폐색 의식을 저지하고 희석시킨다. 관건은 경영진의 결심과 실천이다. 이게 어렵다. ‘고용=비용’의 등식파기가 만만찮다. 심정적 동의와 현실적 채택은 다르다. 허물기 힘든 거대장벽이다. ‘직원행복→명품기업’ 사례가 많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제하면 반발만 키운다. 외투를 벗기려면 바람보다는 햇볕이다.

처음은 설득이다. 직원존중의 경영론이 기업성공의 경영학이란 논리로 확대시켜 자발적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요즘 일본에선 자본독주의 불협화음을 이길 유력한 대안으로 인간력에 주목한다. 세상에 없는 원천기술(기술력)을 불굴의 도전정신(정신력)을 갖춘 생산현장(인간력)에게서 찾자는 발상이다. “돈은 떠나도 사람은 남는다”(마츠시타 고노스케)를 비롯해 인간존중의 혼다이즘(혼다 쇼이치로), 금권적 자본주의보다 자애적 자본(慈本)주의(이나모리 카즈오)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인건비는 고정비보다 변동비에 가깝다. 고용 유연성을 통한 주주자본의 배분파이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이때는 금전부담을 덜면서 직원의 행복을 도모하는 묘책이 추천된다. 비용부담이 적으면서 직원복지가 좋아지는 방안이다. 가령 월급인상보다 법정외복리비의 활용이다. 법정외복리비를 늘려 직원만족과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기대효과다. 선택형 복리후생제도(카페테리아 플랜)가 일례다. 개별점수(부여금액)로 복리후생 선호메뉴를 스스로 택한다. 일괄적용 대신 자율선택이니 혜택수준은 넓어진다. 이렇듯 법정외복리비는 비교적 저렴하되 다양하게 직원만족을 향상시킨다.

이것도 힘들면 ‘공기(空氣)개선’으로 일부나마 직원의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 따뜻한 직장분위기로 직접적인 금전보상이 아니라도 일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다. 직원존중의 기업문화 제안이다. 연봉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직접적이지 않다. 돈만으로 근무의욕과 성과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금전보상보다 다른 형태로 직원몰입을 촉진시킨 경우가 더 좋은 성과를 낳았다는 사례는 많다. 기업이 원하는 리더십ㆍ창의성ㆍ시너지 등이 금전보상보다 자발적인 직원능력의 발현에 의지해서다. ‘마음의 보수’다. 인정ㆍ칭찬ㆍ배려ㆍ신뢰 등 감정보상을 기업문화의 한 축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많은 건 기업에 달렸다. 부담스럽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여론민심이 순식간에 정부에 등 돌리듯 허덕이는 고용불안과 쪼그라든 소비지갑은 조만간 기업에 날선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물론 눈앞의 이윤욕망을 버리기 어렵듯 공생적 대의명분을 지키는 것도 쉽잖다. 그래도 미루거나 방치해선 곤란하다. 지금 대한민국엔 고용불안이 흘러 넘친다. 청년은 사회데뷔를, 가장은 가족부양을 겁낸다. 기업은 임직원에게 변화ㆍ변신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다. 수백 년을 잇는 장수기업은 결코 직원을 방치하지 않는다. 인간력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직원ㆍ가족이 우는데 기업ㆍ사회가 웃을 수는 없다. 배부른 기업과 배고픈 직원도 공존할 수 없다. 한 가득 움켜쥐었을지언정 손안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리는 건 금방이다. 운명공동체의 사회란 원래 그런 것이다. 공멸 경고등은 켜졌다. 무시하고 내달리면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이제 기업은 사회를 위해 뭘 할지 다시 고민할 때다. 독과점적 이익확보로 존경받는 명품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길게 가려면 함께 가라 했다. 가족경영이 가축경영으로, 정도경영이 강도경영으로 비유되는 세태가 이젠 정말 끝났으면 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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