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용역연구 보고서 받고도 대책 안 세우고 국책사업 추진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한 지열발전소에 대해 정부가 전문가들에게서 위험성이 제기됐음을 알고도 건설과 연구를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지진 발생을 우려한 연구결과를 인지했으나 묵살했고, 문재인 정부는 책임을 회피할 방법만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22일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이들 부처는 포항지진 발생 전후 지열발전 연관성과 관련된 보고서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열발전소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실질적인 안전대책 수립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결국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다뤘거나 일부 연구자의 주관적 견해였다는 점에서 실제 대규모 국책사업에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포항 지열발전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환경부는 지열시스템이 토양에 미치는 영향과 관리방안에 대한 용역연구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가 환경부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아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보고서엔 일부 지역에선 열수를 꺼내거나 다시 주입하는 경우 지진의 원인이 되거나 지진의 빈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지열발전을 위한 수리자극(지하에 물을 주입하는 과정)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유럽 지열발전 사례를 분석해 물을 주입할 때 단층의 존재가 미소지진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수리자극 압력의 기준치를 제시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은퇴한 과학기술인의 경력을 활용하기 위해 500만원을 지원해 얻은 연구 결과다.
이들 보고서는 모두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촉발시켰다는 정부조사연구단의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는 “특정 지역을 직접 연구해 발견한 결과가 아니라 외국 참고문헌을 인용하며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당시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책을 세우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과기부 관계자 역시 “정부나 국책연구기관의 공식 발표가 아닌 필자의 주관적 견해라는 점에서 관계부처에 전달할 의무는 없는 보고서”라며 “다만 홈페이지에 공개해 국민 누구나 참고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지열발전과 지진의 연관성은 포항지진 전후 정부 용역연구 이외에 학계에서 논문이나 학회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포항 지열발전소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염두에 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국가배상 여부에 대해 법률자문까지 받았다. 자문 보고서는 정부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책임 논란에 대해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규명하기 위해 자문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열발전에 따른 미소진동 문제는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다만 미소진동을 적정 수준으로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 주체인 정부보다 관리 주체인 민간 기업이나 연구기관을 우회적으로 탓하는 발언이다. 정부가 안전 대책을 세우기보다 책임 피하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관 분야 학계 역시 책임 논란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포항 지열발전 실증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지금까지 확보된 기술과 국제 기준으로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지열발전 연구를 수행해왔고, 포항지진 발생 지역에 큰 지진을 일으킬 만한 활성단층이 존재하는지는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물 주입이 원인이라면 주변 난개발도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난 모르는 일”이란 입장으로 일관하면서 향후 포항지진을 둘러싼 책임 소재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im@hankooki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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