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컨테이너ㆍ체육관 텐트 생활, 특별법 제정에 마지막 희망
전기료 감면 혜택 끝나 겨울 걱정… 노인들 “전기장판으로 버틸 수 밖에”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나고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진은 잦아들었지만, 피해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포항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은 운동장 한 쪽 컨테이너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면적 29.7㎡의 좁은 컨테이너에서 2년째 살고 있는 노인들은 이마저도 쫓겨날까 노심초사다. 파손된 집을 헐고 재건축에 나선 주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집마다 1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에 은행과 이자를 놓고 씨름 중이고,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212명의 주민들이 차가운 바닥 위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2년째 컨테이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12일 오전 찾아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약성리 흥해초등학교. 교문을 지나자마자 다닥다닥 길게 줄지어 붙어 있는 컨테이너 창문 너머로 교사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보였다. 운동장에는 10여명의 학생들이 뛰어 다니며 체육수업에 한창이었다. 교실이 컨테이너인 것만 빼곤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진 이후 불안감을 반영하듯 학생 수는 급감했다.
2017년 말 18학급 420명에 달했던 전교생 수는 11월 현재 15학급 340명으로 줄었다. 매년 입학생이 3개반 60여명에 달했지만, 지진 후 지난해 3월 입학한 2학년은 2개반 44명, 올해 신입생은 2개반 47명밖에 되지 않았다.
흥해초는 포항지진으로 건물 3개동 가운데 교실이 있는 2개동이 심하게 파손됐다. 교실 문과 창문은 모두 뒤틀렸고, 계단은 쩍쩍 금이 간 채로 내려앉았다. 기둥마다 시멘트가 떨어져 나갔고,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근이 건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안전진단에서 붕괴위험 판정을 받았다. 이 학교는 지진 원인으로 밝혀진 흥해읍 남송리 지열발전 현장과 직선으로 2.9㎞ 거리에 있다.
부서진 2개동은 전부 철거됐다. 대신 임시 교실로 컨테이너 14개동이 들어섰다. 학생들은 2년째 이곳에서 방과후 수업까지 듣고 있다.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컨테이너 교실 맞은편에는 3층짜리 건물 2개동을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흥해초 관계자는 “컨테이너 임시공간이 철거한 건물 교실 수보다 적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애를 먹는다”며 “신축하는 교실동 건물은 다음달 말 마무리될 예정인데 행여나 사고가 날까 교직원 모두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기료 폭탄 29.7㎡ 공간도 쫓겨날까 ‘걱정’
흥해초 바로 옆에는 지진으로 집이 부서진 주민들을 위해 임시로 만든 컨테이너 주택 33개동이 있다. 이 중 26개동에 아직 이재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일정소득이 없는 고령의 독거노인들이다. 관리비가 부담돼 정부가 제공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을 마다하고 29.7㎡(9평)의 컨테이너를 택했다.
벌써 2번째 겨울을 맞는 이들의 걱정거리는 전기요금이다. 지진 나고 첫해 겨울 무심코 전기를 썼다가 집집마다 한 달 50만~60만원의 요금 폭탄을 맞았다. 단열재가 없어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운 컨테이너는 바닥 난방부터 온수, 에어컨 등 모두 전기로만 쓸 수 있어 조금만 써도 요금이 금세 오른다.
한전은 처음 9개월간 전기요금을 100% 감면해줬지만 이후 3개월은 절반밖에 감면해주지 않았다. 절반의 혜택마저 사라졌다가 올 초 가수 이미자씨가 포항공연 수익금 7,400만원을 기부하면서 다시 절반만 내게 됐다. 하지만 몇 만원의 전기요금조차 이들에겐 큰 부담이다.
최명춘(76)씨는 “딱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자리에 전기장판을 깔고 그것만 튼다”며 “다들 몸이 약한 노인들이라 벌써부터 옷을 몇 벌이나 껴입고 지낸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한겨울 전기장판 하나 마음 편히 못 쓰는 컨테이너에 지내면서도 쫓겨날까 걱정이다.
이상돈(90)씨는 “흥해읍 덕장리의 본래 집은 새로 지어야 할 판인데 지원금 1,500만원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여기(컨테이너)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서진 집 언제 복구해 돌아가나
지진 재건축 1호 아파트로 주목 받은 북구 환여동 대동빌라 81가구는 4개동을 철거하려다 한 개동을 남긴 채 멈췄다. 각지의 온정으로 시멘트 등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각 세대마다 1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이 벅차 중단했다. 6,000만원까지는 정부 기금으로 1.5%의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4,000만원은 지원이 없어 이자를 낮추기 위해 은행과 협상 중이다.
김대명 대동빌라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진으로 부서진 집을 새로 짓기로 주민들이 어렵게 뜻을 모았지만 문제는 돈이다”며 “고정소득이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이자가 저렴해도 매달 어떻게 갚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지진으로 붕괴위험 판정을 받은 대동빌라 등 ‘전파’ 주택과 절반 정도 파손된 ‘반파’ 주택은 모두 합쳐 956가구다. 이중 483가구는 흥해읍 마산리 일대 추진되는 특별재생사업구역에 포함돼 감정가격으로 포항시가 사들여 공동주택 등으로 재건축한다. 하지만 대동빌라나 컨테이너에 지내는 이상돈씨와 같은 나머지 473가구는 각자 돈을 들여 고쳐야 하는 형편이다.
포항지진 임시구호소인 흥해 실내체육관에는 96가구, 212명이 텐트 속에 지내고 있다. 이들은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들로, 지진으로 창문과 문이 뒤틀리고 비가 샐 정도로 집이 망가졌지만 소규모 파손인 ‘소파’판정을 받아 체육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진으로 집이 부서지면 전파와 반파, 소파 등 3가지로 분류되고 반파 이상 부서져야 임대주택이 제공된다. 한미장관맨션과 같은 아파트는 전파와 소파 2가지만 적용된다. 주민들은 집이 반파 이상 망가졌는데도 전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파로 분류되자 ‘잘못된 규정부터 시정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포항지진 피해 주민들은 특별법 제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포항지진 특별법은 자유한국당 김정재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각각 유사한 내용으로 발의한 법안이다. 이들 법안은 지난 3월 정부조사단이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잇따라 발의됐다. 2017년 11월15일과 지난해 2월11일 포항에서 발생한 각각 규모 5.4와 4.6 지진으로 경제ㆍ신체ㆍ정신적 피해를 본 사람에게 피해 구제와 생활ㆍ심리안정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특별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여야 대립과 이견으로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내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산자위와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법안은 폐기된다.
공원식 포항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됐는데도 이재민 300여명은 차가운 체육관이나 이동식 컨테이너에서 하루하루 힘들 게 생활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지진 2주년이 되는 올해 11월 15일까지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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