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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사색] 한국 정치, 정말 희망이 없다!

입력
2020.03.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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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운동은 초일류, 정치는 3류

민주화운동이 정치개혁엔 실패한 탓

선관위폭거로 ‘정치의 배신’ 또 반복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표결 되어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표결 되어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초일류의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 이와는 대조적인 3류 정치. 바로 우리 이야기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민주화운동 등 초일류의 사회운동을 자랑한다. 그러나 정작 정치는 3류다. 이는 사회운동이 민주화 이후 정치를 개혁하는 데는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피로 이룬 4ㆍ19혁명은 민주당의 정파 싸움 등으로 5ㆍ16군사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 유신말기 YH 여공들의 투쟁과 부마항쟁은 80년 봄을 가져왔지만 이 역시 신군부의 야만과 양김(兩金)의 분열로 전두환 독재로 귀결됐다. 87년 6월 항쟁도 마찬가지다. 민심을 배반한 양김의 분열로 대선에서 노태우가 승리함으로써 ‘죽 쒀서 개 주고’ 말았다. 이 같은 ‘정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 덕분에 민주화는 찾아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전진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지역정당체제와 사당정치에 기초한 3김 정치라는 정치의 후퇴도 찾아왔다. 왜 세계적인 우리의 민주화운동과 사회적 열망은 이처럼 정치 개혁으로 제도화하지 못하고 항상 정치의 배반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사회운동의 정치 제도화 실패와 정치의 배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년 전 우리는 연인원 1,600만명이 참여한 역사적인 촛불 항쟁으로 ‘유신 공주’를 권좌에서 끌어내려 감옥으로 보냈고, 세계는 감동했다. 그러나 정치의 배반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양김의 분열 등으로 비극으로 끝났던 80년 봄이나 6월항쟁과 달리 이번에는 다행히 문재인 정부라는 ‘민주정부’, 정확히 말해 ‘자유주의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촛불 혁명’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촛불이 우리에게 가져온 정치적 결과가 무엇인가는 총선을 앞두고 거대 정당들이 벌이고 있는 위성정당 설립 경쟁이 잘 보여주고 있다. ‘타짜’만도 못한 이 같은 ‘도박판 정치’가 바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바라던 정치는 아닐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정의당 등 ‘촛불 주도 세력’들과 손잡고 정치 개혁을 위해 사표를 줄이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게 만듦으로써 거대 지역 정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꼼수 정치에 의해 엉뚱한 막장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비극의 주범은 중앙선관위이다. 선관위는 4년 전 사표를 줄이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주역이다. 그러나 막상 준연동제가 도입되자 이를 파괴하는 미래통합당의 위성비례정당을 허가하는 폭거를 저질러 촛불정치 개혁을 코미디로 전락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선관위는 우리에게 약 주고 병 줬다. 선관위가 연동형을 주장한 이유가 민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의를 우롱하기 위한 것이었나? 선관위의 몰상식한 결정으로 국회가 제정한 촛불 개혁은 무력화됐고 한국 정치는 막장 드라마로 후퇴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비싼 세금으로 민의 파괴를 조장하는 ‘선거 폭군’ 선관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그것이 선거개혁의 첫 걸음이다.

탄핵에 대해 반성하고 당을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맹점과 선관위의 도움을 받아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미래통합당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정작 실망스러운 것은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다. 특히 위성정당 설립 과정에서 보여준 패권주의는 미래통합당이 점잖게 보일 정도다. 문제는 또 있다. 조국 비판 등 소신을 지켜온 금태섭 의원이 여당경선에서 패배한 것이다. 당내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순혈주의로 유승민계를 쳐냈던 4년 전 새누리당을 빼닮았다. 그러나 4년 전보다 더 절망적이다. 비박세력의 숙청은 상층부에 의해 주도됐다면, 이번 숙청은 무서운 팬덤 정치와 사이버 포퓰리즘에 기초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촛불 항쟁도 또다시 ‘정치의 배반’으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유권자들이 이번만은 이를 심판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한국 정치, 정말 희망이 없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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