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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ESG(K-ESG)가 정말 필요할까

입력
2021.11.09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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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희
이형희SK SUPEX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장

편집자주

바야흐로 ESG의 시대다. 기업, 증시, 정부, 미디어 등 모든 곳에서 ESG를 얘기한다. 대세로 자리 잡은 'ESG의 경영학'을 하나씩 배워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K팝이 세계적 위상을 높이면서 K푸드, K컬처 등 한국문화를 세계화하려는 노력이 확대되고 있고 이는 우리 국민의 자부심과 긍정적 에너지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ESG분야에도 K-ESG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자주 들린다. 과연 K-ESG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문제 제기에 어떤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ESG 열풍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자본시장의 변화다. 즉, 금융기관이 투자를 안전하게 집행하기 위한 평가 수단으로 ESG를 활용하게 되었고 기업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ESG 붐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들로선 대규모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조달할 때 ESG평가에 따라 조달 성공 여부와 이자율이 결정된다고 하니 기업으로서는 ESG를 도외시할 수가 없게 됐다. 기업 경영의 기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자본시장에서 자본조달을 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ESG의 각 요소 즉, 친환경과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수용하는 경영 전략, 법적인 리스크를 방지하면서 경영성과를 모든 주주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제도 정착 등에 대해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ESG평가가 글로벌 기관들에 의해 주도되다 보니 평가항목과 방법이 한국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부분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찍부터 탄소중립을 준비해 왔던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탄소중립은 우리 기업이 불리할 수밖에 없고, 외국은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성이라는 지표가 그들에게는 중요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지배구조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은 단기 성장의 역사로 인해 서구 기업들과는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같은 잣대로 평가하니 한국기업은 너무나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꽤 높은 상황이다. 때문에 한국 기업의 실정에 맞는 ESG기준을 새롭게 만들어 한국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일각에서 K-ESG 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 인식에 공감은 할 수 있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깊은 의문이 생긴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려는 기업은 여전히 K-ESG를 기준으로 경영을 하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ESG기준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 학생이 국내 대학을 간다면 한국에서 배운 과목을 위주로 준비하면 되지만 그 학생이 미국의 대학을 가려고 한다면 미국 대학이 원하는 내용의 전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즉, 힘들여서 공부한 한국사, 국어 등은 미국 대학의 전형에서는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ESG 평가기준이 한국기업에 불리하다고 해서 새로운 한국적 기준을 만들게 된다면 오히려 기업들은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대학 입시와 미국대학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기업이 ESG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나 유관 기관이 지원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보다 각 기준과 평가방법의 공통 부분을 잘 정리한 '참고서'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들이 수많은 글로벌 평가에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각 기준들이 요구하는 공통 사항을 우선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참고서'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형희 SK SUPEX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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