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 9번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교향곡 9번을 완성한 지 3년 만인 1827년, 베토벤은 10번째 교향곡에 착수한다. 작곡 도중 "새로운 종류의 음악적 중력을 발견하는 중이다"라고 의욕을 보였지만,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베토벤 교향곡 10번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10번의 미완성 스케치는 250여 개의 음표에 40여 개의 프레이즈로 길어봤자 토막토막 떨어진 세 네 마디 선율에 연주시간은 11초에 불과하다. 이 불연속적이되 불완전한 스케치는 후대 음악학자들에게 베토벤의 영감을 가늠하고 상상하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짧은 선율의 흔적을 해독하면서 이 악상이 어느 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퍼즐 맞추듯 연구를 거듭했던 것이다.
독일 통신기업인 도이치텔레콤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베토벤 교향곡 10번:AI 프로젝트'(Beethoven X: The AI Project)를 가동시켰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베토벤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완성하기 위해 전문가 그룹을 결성했는데, 인공지능 공학자, 음악학자, 베토벤 연구자 등이 동참했다. 연구진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경계하며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공지능으로 베토벤의 천재성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이 예술적 상상력을 드높이는데 어떤 성과를 가져오는지가 주요 관심사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공지능에 베토벤이 선호했던 선율과 화성 작법을 훈련시켰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모티브를 짧게 입력하고 이어지는 후속 악상을 인공지능에 예측하도록 맡기면서 실수를 교정하고 더 적절한 선율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이 시점에선 인간 전문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연구팀은 베토벤이 남긴 10번 교향곡의 스케치가 스케르초와 론도 악장의 중심주제라 추정했다. 그러므로 교향곡의 3악장에 주로 배치되는 스케르초와 4악장에 배치되는 론도에 집중해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는데, 충분한 입력값을 확보하고 다른 작곡가와의 음악적 변별력을 뚜렷이 드러내기 위해 하이든, 모차르트 작품까지 포함해 딥 러닝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연구에 참여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로베트 레빈은 "마치 열성적 학생처럼 AI도 매일 훈련하며 배우니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더라"며 인공지능의 꾸준한 습득력을 칭찬했다.
인공지능은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10번의 스케치로 연주시간 20여 분에 이르는 스케르초와 론도를 작곡했다. 초연은 2021년 10월 9일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에서 인간 오케스트라(Beethoven Orchestra Bonn)에 의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졌다. 인공지능이 창작한 교향곡을 연주했던 인간 음악가들은 "감정선의 흐름이 일관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 집중이 힘들었다"고 불평하거나, "중요 주제를 연결하거나 분위기를 전환하는 에피소드 부분이 어색해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제껏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의 개발은 대부분 공학계열의 연구자들이 주도했고,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인간의 작업을 최소화하는 데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는 작업에서도 프로젝트 전반을 총괄하는 인물은 딥 러닝과 코딩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인공지능 공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창작하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음악성의 깊이를 추구하려면 음악가들이 보다 핵심적인 위치에서 인공지능의 창작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창작한 교향곡이 음악적으로 인간의 작품과 유사하게 들릴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교향곡을 연주한 이가 인간이었던 덕택이었고, 청중들이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음악을 생산하는 음악가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성이 개입되지 않은 인공지능의 순수한 창작물에 대해 일반인들은 유의미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창작 주체의 정체성 문제를 신중히 접근하고 대중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것이 인공지능 작곡이 극복해야 할 선결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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