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윤활유로 각광받았던 술
정치인에겐 치명적인 독 될 수도
대통령 술 절제하는 모습 보여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유명한 애주가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면 총리에 임명된 그에게 기자들이 향후 일정을 묻자 “샴페인부터 한 잔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칠의 정적들은 ‘아침에 눈 뜨면 스카치 위스키, 점심 때 샴페인 한 병, 저녁에 샴페인 또 한 병, 새벽까지 브랜디와 와인을 마시는’ 그를 거론하며 “대영제국이 주정뱅이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래도 처칠은 개의치 않았다. 국왕 조지 6세가 “어찌 그리 낮술을 잘 마시느냐”고 묻자 “연습하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가 드물었던 처칠은 “술 때문에 잃은 것보다 술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두주불사(斗酒不辭)’는 처칠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처칠이 평생 마신 샴페인은 4만2,000병에 달한다고 한다. 매일 2병씩 무려 57년간 쉬지 않고 마셔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 말(열 되)을 뜻하는 두(斗)는 약 18리터에 해당하는데, 처칠은 문자 그대로의 ‘말술’도 가능했을 것 같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두주불사’는 칭찬으로 여겨졌다. 술을 잘 마신다고 하면 인간관계가 원만한 호인(好人), 대범하고 소통에 능한 리더를 떠올렸다. 술에 관대했던 문화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주불사’의 결말이 모두 처칠과 같진 않다. 술은 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리는 독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다. 구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은 1994년 독일 방문 때 만취한 나머지 환영 연주를 하는 군악대장의 지휘봉을 빼앗아 휘둘렀는데 이 장면이 TV에 생중계됐다. 술 때문에 곯아떨어져 아일랜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펑크 낸 일도 있다. 음주 기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샀던 옐친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사람을 몰고 다니는 두주불사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고비마다 술을 활용했다. 대선후보 시절 이준석 당시 당대표와의 갈등을 폭탄주 회동으로 풀었고,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도 술을 마시며 스킨십을 강화했다.
그러나 술은 일시적인 소통의 윤활유가 될 순 있어도, 근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진 않는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등 돌린 윤 대통령과 이준석 의원의 관계, 라인야후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술만으로 연결된 관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어느덧 술은 윤 대통령의 주요 리스크로 자리 잡았다.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앞둔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술자리를 가져 논란이 됐고, 지난달엔 전통시장 해산물 가게에서 “소주 한 병만 있으면 되겠다”고 말해 비판받았다.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시장 상인에게 농담을 건네 분위기를 풀겠다는 의도였겠지만 국민들에겐 술에 대한 ‘집착’으로 비칠 수 있다.
“제가 욕 좀 먹겠다”며 국민의힘 당선자 워크숍에서 맥주를 돌린 건 대통령의 절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참모진이 만류했고, 비판받을 일인 줄 알면서도 술을 마셔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까.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더구나 당일은 신병교육대에서 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한 병사의 영결식이 치러진 날이었다.
남녀 구분 없이 세대 보편적으로 술을 즐기는 시대가 됐지만, 술을 마셔도 좋은 자리와 참아야 하는 자리에 대한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술자리에서의 실언과 돌발 행동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쟁과 흉년, 전염병 폐해를 모두 합쳐도 술의 해악과 비교할 수 없다"(윌리엄 글래드스턴 전 영국 총리)는 경고를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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