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본보, 무당 설문조사로 본 현실과 바람
무속인 71% "무당 사회적 인식 부정적"
절반은 "충분히 교육 못 받아" 학원 찾아
범죄 예방책으로 자격인증 제도 요구도
"무속인 등록 등 정보 체계적 관리 필요"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무속을 너무 상업화하고 있어요.”
무속인 김단월(가명)씨는 자신을 광고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도 하지 않고, 방송사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와도 단호히 거절한다. 유명해지면 부귀영화는 누릴 수 있겠지만, 신령님께 기도할 시간이 사라지고 불쌍하고 절실한 사람들과 만나는 날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3년 전 신내림을 받은 김씨는 자신을 내려놓고 신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매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의지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잘나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8월 23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돈만 쫓는 무당들 탓에 무속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돈 버는 게 우선순위가 되다 보니, 굿을 하고 치성(정성 들여 기도하는 행위)을 드릴 때 절차와 예법이 설 자리를 잃었고 무분별한 신내림으로 무속 세계가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손님을 부를 능력은 없는데 먹고살 길을 찾다 보니, 유튜브 조작 방송 등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세계가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무당들은 남들이 갖지 못한 능력이 있는 거잖아요. 다만, 능력을 좋은 쪽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신도들의 절실함을 느끼고 치성을 다하면 무속 신앙이나 무교인의 지위도 저절로 올라가지 않을까요."
무당 129명 설문조사
무당 10명 가운데 7명은 무속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속 신앙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미신으로 치부하는 탓에 그런 인식이 확산됐다고 믿었다. 본보는 지난 8월부터 두 달 동안 무당 12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무당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사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고, 무교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의 도움도 받았다.
설문에 참여한 무당의 평균 나이는 54.7세로, 활동 지역은 서울(42.6%)과 경기(20.2%)가 가장 많았다. 학력은 고졸 및 중퇴가 절반 가까이(48.0%) 됐고, 대졸 및 중퇴(21.0%)가 뒤를 이었다. 무당이 되기 전 종교는 불교(41.9%)가 가장 많았으며, 종교 없음(24.8%), 기독교(14%), 천주교(13.2%) 순이었다. 모시고 있는 신(神)으로는 조상신, 천신, 장군신, 산신 등이 많았다.
편견이 부정적 인식 확산시켜
응답자 10명 중 6명(59.7%)은 사람들이 무당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답했고, 특히 11.6%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무속을 미신으로 여기는 종교적 편견(78.3%) △미디어의 부정적 묘사(28.3%) △무교인 관련 사기 및 성범죄(21.7%) △전문성에 대한 의심(18.5%) 등이 꼽혔다. (중복 답변 허용) 반면, 사람들이 무당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답한 무당은 17.9%에 그쳤다. △종교적 다양성 인정(42.3%) △정신적 치유와 상담(34.6%) △사회·문화·역사적 가치 인정(23.1%)을 이유로 들었다.
무속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핍박을 받았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차별과 억압이 극에 달했다. 일본에선 당시 한국의 전통 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근대화와 합리주의를 내세워 이를 탄압했다.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은 "무속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선의 원시적 습속을 폄하하려는 의도로, 이 같은 왜곡된 시각이 무속 신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무속인들 스스로 부정적 인식을 키운 측면도 있다. 충남 계룡산에서 만난 21년 차 무당(54)은 "사람들이 무속을 낮게 보는 건 결국 무당들 탓이다. 좋은 무당도 많지만 나쁜 무당들이 도드라지면서 전체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무당이 자주 노출되고 '파묘' 같은 영화가 흥행하면서 예전보다 무속인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엔 무당되는 것 거부
무속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응답자의 73.7%는 처음에는 무당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무병(71.3%)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무당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무병의 증상은 다양했는데, 신체적 통증이 53.5%로 가장 많았고, 정신 질환(32.6%), 이상 행동(23.3%), 감정 문제(21.7%)가 뒤를 이었다. 무교인이 되기 전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은 경우도 31.0%로 조사됐다. 병명은 우울증이 65.0%로 가장 많았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42.5%)와 양극성 장애(15%)도 적지 않았다.
서울 인왕산 기도터에서 만난 8년 차 무당(39)은 "7년간 우울증을 앓아 정신병원까지 입원하고 3년간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먹었는데, 신내림을 받은 후 토하는 증상과 근육통이 사라졌다"며 "이제는 햄버거 세트를 먹을 만큼 몸이 회복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이 무당처럼 무교인이 된 뒤에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은 74.4%로 조사됐다.
교육 못 받아 학원 가는 무당들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됐지만 정작 '신부모'(신내림을 통해 무당을 길러낸 스승)에게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는 이들은 드물었다. 절반 정도(46.5%)는 '신부모로부터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충분히 교육받았다'는 응답자는 30.2%에 그쳤다. 제대로 배운 게 없다 보니 무당 10명 중 3명 정도(27.1%)는 무속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경기 안산에 있는 화령암전수소 무속학원의 변경숙 원장은 "개인적으로 신내림 받고 1년 반 뒤 신부모와 결별하면서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며 "내가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제자들을 돕고자 학원을 차렸다. 춤사위와 악기 다루는 법 등 굿판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했다. 비용은 한 달에 30만~50만 원 수준이다.
무당들은 무속 신앙이 양지에서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42.6%)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무속 신앙에 대한 학술적 연구(20.2%)와 문화재 지정 및 보호(13.2%)라고 응답한 무속인들도 있었다. 무속범죄를 줄이기 위해선 △무교인 자격 인증제 도입(26.4%) △범죄 행위 강력 처벌(24.8%) △자정 노력 강화(21.7%) 등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이성재 경신연합회 이사장은 "제대로 된 무교인 양성을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성직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며 "무교인들도 비윤리적 행위를 하지 않아야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무교 양성화하려면 규모부터 파악해야
노무현 정부는 한때 음지에 있던 무속 신앙을 양성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롯한 기성 종교의 반대가 컸고, 정치권의 추진 의지도 약해 흐지부지됐다. 교리가 없는 데다 신에 대한 무속인들의 해석이 제각각이라 정부를 향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기 쉽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무속 전문가들은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무속인을 양성하려면 규모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신연합회는 무당이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지만, 검증할 방법은 없다. 정부가 무속 관련 통계를 집계하지 않는 데다 최소한의 실태조사조차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무속학회 회장을 지냈던 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장은 "모든 무속인에 대해 언제 어디서 내림굿을 받았는지, 어떤 신부모 밑에서 배웠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가 포함된 등록 절차가 필요하다"며 "정부나 관련 단체가 정보를 관리하면 무속인들도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좀 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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