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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상에 태어나는 데 동의합니까"

입력
2025.02.08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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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고토미 '너를 기다리다'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의도 없이 아이를 마음대로 낳았대! 냉장고를 뒤적이던 리리카가 말했다. 그녀의 다음 말은 눈사태처럼 와르르 쏟아지는 매미 울음소리에 묻혀버려 들리지 않았다.”

대만 출신 작가 리 고토미의 공상과학(SF) 소설 ‘너를 기다리다’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합의 출생제’가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후의 일본. 주인공이자 임신부 ‘다치바나’의 회사 동료 ‘리리카’는 총무부의 부장이 강제 출산 죄로 기소당했다는 소식을 전하죠.

합의 출생제에 따라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은 태어나기 이전 태아에게 출생 의사 유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당사자 동의 없는 출산을 강행하면 감옥에 갑니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이 “인류가 삶의 주도권을 완벽히 쥐게 됐다”며 관련 제도를 법제화한 상황입니다.

너를 기다리다·리 고토미 지음·마르코폴로 발행·180쪽·1만6,700원

너를 기다리다·리 고토미 지음·마르코폴로 발행·180쪽·1만6,700원

소설에서는 태아의 출생 의사 판단을 위해서 먼저 아이의 ‘생존난이도’를 측정합니다. 태아의 성별, 성적 지향에 더해 친권 예정자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지위, 병력 등의 정보를 토대로 “태어날 아이가 살게 될 삶에 대한 괴로움 정도를 평가하는 수치”를 내는 겁니다. 1은 매우 살기 편한 상태, 10은 매우 살기 괴로운 상태로 해석하죠. 임신 9개월 차에 접어들면 태아에게 장치를 통해 이 수치를 전달하고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삶의 괴로움 지수가 3인 인생을 살 거라 예측되었습니다. 태어나는 데 동의합니까.”

한국에서 젊은 세대가 쓰는 ‘낳음당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헬조선’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각박한 현실에 넉넉한 환경을 주지 못한 부모를 향한 원망이 담겼죠. 소설 속 다치바나는 자신 역시 동의하고 태어난 만큼 여러 좌절에도 “내가 택한 것”이라며 살아왔지만, 막상 자기 아이가 출생을 거부하자 혼란에 빠집니다. 같은 질문이 현실에 주어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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