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오리진, 재사용 로켓 첫 비행 연기
뉴 글렌 발사로 우주시장 지배자 스페이스X에 도전장
같은 비용으로 '팰컨9'보다 많이 운송
베이조스는 중량, 머스크는 비용 초점
안보위성·위성통신 놓고도 경쟁 예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만든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의 재사용 로켓(발사체)인 ‘뉴 글렌(New Glenn)’이 13일(현지시간) 우주로 발사되려 했지만 기술적 이유로 연기됐다. 2016년 뉴 글렌 개발을 공식 발표한 이후 9년 만에 이뤄진 첫 시험 비행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발사가 가시화하면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지배하던 상업 우주시장에 블루 오리진이 참여하는 경쟁 구도가 형성, 민간 재사용 발사체의 혁신을 앞당기고 시장도 더욱 커질 거라는 기대가 나온다.
로켓 1단 대서양 착륙·회수... 다목적 우주선 테스트도
블루 오리진에 따르면 뉴 글렌은 이날 오전 1시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30분씩 수차례 지연된 끝에 결국 오전 3시쯤 중단됐다. 블루 오리진은 ‘X’를 통해 “로켓 하위 시스템의 문제로 연기한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블루 오리진은 16일까지 발사를 시도할 수 있다. 아직 다음 발사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뉴 글렌은 높이 98m, 지름 7m의 2단 로켓으로, 로켓 2단 중 1단은 재사용이 25회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로켓 1단은 이날 뉴 글렌 발사 이후 분리돼 정밀유도시스템으로 대서양 해상에서 미리 대기하던 드론십 ‘잭린(Jacklyn)’에 안전하게 착륙해 회수될 예정이었다.
이번 시험 비행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재사용 로켓 1단의 착륙과 회수 성공 여부였다. 그간 스페이스X만이 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유일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블루 오리진은 로켓 1단에 "So You're Telling Me There's a Chance(그래서 네 말은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라는 이름을 별도로 붙였다. 1994년 영화 '덤 앤 더머'의 유명한 대사에서 따온 말인데, 극도로 낮은 성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뉴 글렌은 지구 상공 2,000㎞ 이하인 저궤도(LEO)에는 최대 45톤의 페이로드(운송 중량)를, 3만5,000㎞ 안팎인 정지궤도(GEO)에는 최대 13톤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뉴 글렌엔 블루 오리진이 자체 개발한 우주 이동 플랫폼 ‘블루 링 패스파인더(Blue Ring Pathfinder)’의 모형이 실렸다. 블루 링은 블루 오리진이 미래 고객들의 페이로드를 실어 나르기 위해 준비하는 다목적 우주선으로, 정지궤도는 물론 달과 화성까지 다양한 화물을 운송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시험 비행에선 블루 링 개발에 필요한, 우주 궤도에서 지상과의 통신, 우주 내 원격 측정 같은 기술들이 테스트될 것으로 전해졌다.
우주관광으로 명맥 이어오던 후발주자의 반란
상업용 민간 우주시장은 그간 스페이스X의 독주 체제였다. 스페이스X는 2008년 9월 첫 궤도 로켓인 '팰컨1' 발사에 성공한 이후 지난해 한 해 동안에는 무려 131회의 로켓을 발사, 우주비행사와 탐사선, 저궤도 통신용 위성인 스타링크 등을 대거 우주로 올려 보냈다. 특히 지난해 발사 131회 중 128회에 재사용 발사체 팰컨9을 썼는데, 성공률이 99%에 달할 정도로 기술 안정성을 확보했다. 반면, 블루 오리진은 스페이스X보다 앞선 2015년 대기권을 벗어나 지구로 돌아오는 준궤도 재사용 로켓인 '뉴 셰퍼드(New Shepard)'의 착륙에 성공했고, 이후 2016년 더 먼 우주 탐사를 목표로 뉴 글렌 개발을 발표했지만 발사가 지연돼왔다. 블루 오리진은 2021년 뉴 셰퍼드에 유명인사들을 태워 준궤도 우주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민간 우주여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블루 오리진이 뉴 글렌 발사에 성공할 경우 스페이스X의 경쟁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될 걸로 보인다. 뉴 글렌은 팰컨9과 비교해 한 단계 발전한 로켓으로 평가된다. 높이 98m인 뉴 글렌은 팰컨9(70m)보다 28m나 큰 데다, 너비도 7m로 팰컨9(5m)에 비해 2m나 길다. 이 덕분에 대형 화물 수송에 더 적합하다. 실제 뉴 글렌은 저궤도 물체 운송을 기준으로 팰컨9(23톤)보다 2배나 많은 45톤을 적재할 수 있다. 반면, 1회 로켓 발사 비용은 뉴 글렌과 팰컨9 모두 6,000만~7,000만 달러 정도로 비슷한 걸로 추산된다. 뉴 글렌이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화물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는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블루 오리진이 더 많은 페이로드에 집중하는 건 베이조스의 우주사업 철학에서 비롯된다. 베이조스는 2000년 블루 오리진을 창업할 당시 중공업 같은 환경오염 산업을 지구 밖으로 옮겨 지구를 '인류가 오래 살 수 있는 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 때문에 베이조스는 거대한 물체를 지구 밖으로 옮기는 로켓 개발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와 달리 머스크가 2002년 스페이스X를 창업한 건 소행성 출동과 환경 파괴 등 지구가 직면할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머스크의 우주사업 철학에서 지구는 '탈출해야 할 장소'인 셈이다. 이에 따라 머스크는 지속적이고 빠른 혁신을 통해 로켓의 발사 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해왔다.
스타링크 vs 카이퍼... 위성통신 혁신 기대
블루 오리진은 뉴 글렌 발사를 기점으로 민간 상업 우주시장에서 몸집을 키워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루 오리진이 계획 중인 우주정거장 ‘오비탈 리프(Orbital Reef)’ 건설 프로젝트에서도 뉴 글렌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은 미국 우주기업 시에라 스페이스, 보잉 등과 함께 오비탈 리프 건설을 추진 중이며, 이곳이 장기적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할 걸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우주군(USSF)은 지난해 6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약 30건의 국가 안보 위성을 발사하는 56억 달러 규모의 국가안보우주발사(NSSL) 프로그램 계약자로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X, 미국 우주기업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를 선정해 경쟁을 붙였다.
향후 저궤도 위성통신 시장에서도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X의 경쟁이 불붙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페이스X는 팰컨9 로켓을 이용해 현재 지구 저궤도에 6,000개 이상 올려놓은 위성들(스타링크)을 2027년까지 1만2,000개로 늘릴 계획이다. 블루 오리진도 스타링크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프로젝트 카이퍼’ 구축을 위해 3,200개가 넘는 통신 위성을 뉴 글렌으로 우주에 올린다는 목표다. 업계에선 스타링크와 카이퍼의 경쟁이 기술 혁신과 비용 절감을 촉진해 소비자들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금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베이조스는 블루 오리진에 연간 1조 원씩 투자하며 뚝심 있게 개발을 밀어붙여 왔다"면서 "'뉴 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는 우주에 모든 걸 거는 이들이 주도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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