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동남아 월드컵' 우승 이끈 김상식 감독
현지에서 누구나 알아보며 축하, 인기 치솟아
"베트남 축구 발전만 생각, 묵묵히 노력하겠다"
“베트남 어디를 가든 어른,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나를) 알아봐 주고 크게 반가워하며 축하해 준다.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정상에 오른 김상식(48) 감독은 11일 하노이에 위치한 베트남축구협회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우승의 기쁨을 숨기지 않은 김 감독은 “결승 진출을 목표로 했지만 우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팀원 모두 노력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덕”이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8일~이달 5일 진행된 미쓰비시컵에서 8경기 연속 무패(7승 1무)를 기록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미쓰비시컵은 동남아시아 10개국이 출전하는 이 지역 최고 권위의 축구 대회다. ‘동남아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베트남의 우승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김 감독이 작년 5월 베트남 사령탑을 맡은 이후 8개월 만에 이룬 쾌거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우승 요인으로 ‘원 팀’ 전략을 꼽았다. 그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 준 열정이 대단했고, 의지도 컸다”며 “띵감(정 문화)을 바탕으로 선수들과 우정·신뢰를 쌓은 점, 그들이 나를 믿고 따라온 점이 맞물리면서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항서(66)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아버지 리더십’으로 선수와 팬들에게 ‘파파 박’이라고 불렸던 점에 빗대 자신의 스타일을 ‘친형 리더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훈련 땐 엄격하면서도 평소에는 스스럼없이 선수들을 대하는 형 같은 존재라는 얘기다. 이를 보여 주듯, 지난 5일 미쓰비시컵 우승 확정 뒤 김 감독이 댄스 세리머니를 펼치며 분위기를 띄운 영상은 베트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김 감독은 “’호랑이 선생님’이 돼야 하는데 자꾸 춤 얘기가 나와 민망하다”며 “사실 그때 힘이 없었는데 선수들이 자꾸 (춤을) 춰 달라고 졸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지에선 그가 평소 베트남어로 국가를 함께 부르려 노력하는 모습이 선수단뿐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리로부터 1급 노동훈장 받기도
물론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당장 물리적 시간이 짧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뛰던 선수들을 대표팀에 소집해 합을 맞출 기간은 실질적으로 1, 2일뿐이었다. 한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원정을 포함해 8경기를 치르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핵심 선수의 부상 등 악재도 겹쳤다. ‘한 경기에서도 지옥을 수차례 오고갔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큰 힘이 돼 준 사람은 박 전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박 감독님이 경기가 끝날 때마다 조언하고 응원해 줬다. 이번 우승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 “박 감독님이 잘했기 때문에 내가 베트남에 올 수 있었고, 또 내가 잘해야 앞으로도 또 다른 한국 지도자가 (현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에 ‘우승 유전자(DNA)’를 돌려준 김 감독의 인기는 연일 치솟고 있다. 팜민찐 베트남 총리로부터 1급 노동훈장도 받았다. 인터뷰 당일에도 축구협회 사무실에 팬과 후원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베트남 내 한국 이미지 향상에도 일조했다. 김 감독은 “한국 교민이나 사업차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 기업인들이 현지에서 누구를 만나든 축구 얘기만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며 “한국인에게 도움이 돼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친정’ 한국의 K리그1 전북현대를 언급하면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베트남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 감독은 전북현대 사령탑 시절이던 2023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지내다 지난해 5월 베트남 대표팀 지도자로 새 출발을 했고, 결국 비상의 날개를 펴게 됐다.
향후 과제도 산적
김상식호(號)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하다. 당장 3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 말레이시아, 네팔을 상대로 본선 진출권을 따야 한다. 베트남 국민들의 눈과 기대치는 이미 한껏 높아졌다. ‘빅 4’(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많은 동남아 팀이 귀화 선수와 이중국적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하는 점도 부담이다.
김 감독은 “당연한 우승은 없다. 베트남이 동남아 지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월드컵 본선까지 나가는 꿈을 꾸려면 나와 대표팀, 베트남축구협회 모두 노력해야 한다”며 “오직 베트남 축구 발전만 생각하면서 묵묵히 내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