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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강국의 그늘, 마구잡이 조업 '어글리 코리아 어선들'

입력
2014.06.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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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불법어업 중인 배에 다가가 '훔친 물고기'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 보이며 어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불법어업 중인 배에 다가가 '훔친 물고기'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 보이며 어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그늘, IUU

2011년 뉴질랜드에서는 자국 연안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원양어선에서 벌어진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당시 뉴질랜드 인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던 국내 대표원양어선회사 사조오양 소속 배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집단 탈출해 뉴질랜드로 도망쳐 온 것이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들로부터 받은 비인간적인 처우를 고발했다. 쇠파이프 등 둔기로 폭행을 당했고 노동착취, 성희롱, 성폭행까지 있었다고 폭로했다.

곧바로 자국수역 내에서 조업하는 외국 선박들을 조사한 뉴질랜드 정부는 이듬해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독 한국 선박에서만 인권침해는 물론 미신고 어업, 어업권 위조, 쓰레기 투기 등 각종 불법행위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파문이 커지자 우리 정부는 2012년 5월 국무총리실 주재로 정부 합동조사단을 꾸렸고 4개월 뒤, 모든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처벌은 따르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검찰이 사건 피의자인 사조오양 측에서 관련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에 뉴질랜드와 호주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현재 뉴질랜드는 자국 수역 내에서 조업하는 외국 선박에 대한 규제 강화를 준비 중이다.

원양강국 한국의 그늘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 원양어업 어획량 세계 3위, 원양참치 조업량 세계 2위의 원양강국이다. 전 세계 바다에서 90개의 국내 원양업체가 선박 359척을 거느리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 18개 지역수산기구 중 16개에 가입할 정도로 활동이 활발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법어업(IUU)’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에 인접한 각국 연안과 남극해 등에서 국제사회가 규약으로 정한 어족자원 보호 및 인권수호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각 국가들이 대응에 나섬에 따라 수출제한 등 경제적인 피해는 물론 국가 위신 추락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IUU란 ‘불법(Illegal)’, ‘비보고(Unreported)’, ‘비규제(Unregulated)’ 어업을 뜻하는 용어로, 관련국가 및 국제수산기구에 보고하지 않거나 어획량 등을 거짓 보고하는 어업활동이 이에 해당된다. 더불어 선원들에 대한 부적절한 처우 등 선박 내에서 이뤄져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행위들이 포함된다. 2011년 국내 한 원양어업회사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연안에서 배의 국적과 종류를 나타내는 선박식별표시를 숨긴 채 허가 받은 어획량을 초과해 조업을 하다 적발됐다. 당시 15만4,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됐지만, 해당 선박은 벌금을 미납한 채 해역을 이탈했다.

또 다른 원양사는 2011~12년 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연안에서 어업권 없이 어로활동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이 업체는 라이베리아 당국에 위조된 어업권 및 위조문서를 제출, 결국 벌금 700만 달러가 부과됐다.

이 같은 불법 어업행위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지난해 4월 내놓은 보고서 ‘한국원양어업 불법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7년간 불법어업으로 적발된 한국 선사는 20개 업체, 34개 선박에 달한다.

제재에 나선 국제사회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의 불법어업 행위가 잇따르자 국제사회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와 가나, 퀴라소 등 3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했다. EU는 2008년 불법으로 어획한 수산물 및 이를 사용한 수산가공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EU IUU Regulation)을 제정했는데, 이를 근거로 본격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것이다.

아직 절차가 남아 있지만 만약 최종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면 유럽으로의 수산물 수출이 전면 금지되는 등 강한 규제가 가해진다. 현재 지난해 한국의 대 EU 수산물 수출물량은 2만9,100톤으로, 1억 249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또 IUU 리스트에 오른 원양어선은 EU지역 내 항구 입항 자체가 불허된다. 세계 원양업계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위상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우리 정부의 상황 대처는 안일했다. 2011년 원양어업업체 I사의 선박이 남극 로스해에서 이빨고기(메로)를 제한량의 4배 가까이 남획했는데, 이를 명백한 불법어업 행위로 판단한 EU가 해당 배의 IUU 선박 지정을 남국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의 의제로 상정하자 25개 회원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 정부가 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위원회의 만장일치제도를 악용, 나머지 회원국들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당 선박의 IUU등재를 홀로 반대했다. 급기야 우리 정부는 해당 선사에 과태료 150만원, 3개월 영업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데 그쳤다. 이에 사안을 심각하게 판단한 미국 정부가 한국을 공식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하고 나섰다. 지난해 1월 미 상무부가 의회에 2년마다 제출하는‘IUU국가보고서’에 한국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나, 이탈리아, 멕시코, 파나마, 스페인, 탄자니아, 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미국이 지정한 IUU국가로 낙인 찍혔다. 당시 CCAMLR 회원국들은 일제히 우리 정부의 가벼운 처벌을 놓고“다른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는 '뒷북대응'

미국에 이어 EU까지 우리나라를 불법어업국가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뒤늦게 움직였다. 지난해 1월 해양수산부가 불법어업을 한 사람에게 2,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 하지만 EU는 “통제력이 약하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급기야 해수부는 7월 불법어업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불법 수산물 가액 3배 이하의 벌금 부과 ▦EU수출에 필수서류인 어획증명서 발급 불허 등의 내용을 담은 강화된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원양업계가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EU가 불법어업 근절의 필수조치로 꼽는 어선위치추적장치(VMS) 설치를 6개월 유예하고, 더불어 VMS로 어선을 감시하기 위해 올 3월 만든 조업감시센터(FMC) 가동도 내년으로 미룬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행히 FMC 개장 및 VMS 설치지원 등 대책이 곧바로 추진됐지만, EU의 시선은 이미 싸늘하게 돌아선 후이다.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도 정부의 대응이 졸속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그린피스의 박지현씨는“해수부가 지금까지 식량자원 확보, 국가수익 증대 등을 내세우면서 원양업계의 손을 들어줬던 게 사실”이라며 “불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 프로세스를 보완하는 등 실질적인 억지력을 강화해 해양자원 보존에 힘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불법어업국 최종 결정되나

정부가 뒤늦게 대응에 나선 가운데,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이달 8일 EU 집행위원회 산하 수산총국 실사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최종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할지, 아니면 취소할지를 판단하기 위해 조업감시 및 불법어업 예방을 위한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실사단은 서울 외교부와 부산의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부산지원과 조업감시센터 등을방문, 해수부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다.

정부는 실사단이 우리나라 정부의 개선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상황. 실사단은 이번 실사 내용을 EU 집행위에 보고해 오는 11월쯤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아직 실사단의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 해수부 관계자는 “외부의견을 적극 반영해 관련 법안에도 반영 중인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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