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냉전 끝난 후 보통군사국가화 아베, 무기수출금지 3원칙도 폐지
같은 패전국 독일·이탈리아의 선택 진정한 반성과 실질적 보상 병행
日에 최선의 안보정책은 뭘까… 과거사 문제 인정하고 신뢰 회복에 우선 힘써야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의 안보 및 방위정책 변화가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50여년 간 견지해 오던 무기수출 3원칙을 폐지하면서 일본에서 생산된 무기의 대외수출이 가능하도록 하더니, 7월에는 각의 결정을 통해 반세기 이상 금기시해온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했다. 지난해 말에는 국가안보회의 및 그 사무국에 해당되는 국가안전보장국도 처음으로 설치했고, 공무원들이 국가안보 관련 비밀 사항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정비밀보호법도 제정했다.
이 같은 일본의 방위정책 변화는 아베 총리 이전 시기부터 진행되어온 ‘보통군사국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다시는 전쟁을 국가의 정책수단으로 추진하지 않으며 육해공군 보유 자체도 금지하는 ‘평화헌법’을 제정하면서 방위정책에 스스로 제약을 두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비록 6ㆍ25 전쟁 직후 방위청과 육해공 자위대를 창설했지만, 각 자위대가 보유하는 무기들은 어디까지나 자국 방위를 위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기반적 방위력’ 개념을 표방했다. 또한 일본 방산업체에서 생산된 무기를 해외에 수출할 수 없다는 ‘무기수출금지 3원칙’이나, 우주 공간에서 군사위성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 원칙’ 등을 천명해 왔다.
냉전 이후 日 적극적 안보정책 추구
그런데 냉전체제가 종료된 이후 일본 내에서는 이같은 비군사화 규범들을 수정하여 일본도 미국이 수행하는 국제안보활동에 동맹국으로서 같이 참가할 수 있는 안보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국가전략론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1991년 걸프전이나 2001년 시작된 대테러전쟁에 참전해 동맹국인 미국을 지원하고 그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여온 사례를 지향해야 할 모델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일본은 이 같은 ‘보통국가론’의 국가전략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제안보활동 참가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1990년대에 제정한 평화유지활동(PKO)법이나 주변사태법, 그리고 2000년대 들어와 제정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이나 해적퇴치특별법 등으로 국제안보활동 참가가 확대됐다. 2008년에는 우주기본법이 제정해 우주 공간에 군사정찰위성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기반적 방위력’ 개념을 ‘통합기동방위력’ 개념으로 대체하면서 군사력을 질적으로 증강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아베 정권의 ‘무기수출금지 3원칙’ 폐지와 ‘집단적 자위권’ 용인 등은 실은 1990년대부터 진행된 이런 일본 안보정책의 변화의 맥락 속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통군사국가화는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균형 정책에 부합하고, 한국의 안보태세 강화에도 도움 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의 안보체제 강화가 미일동맹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한미동맹의 억제 태세를 강화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달리 주변국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외교안보수석 명의의 브리핑을 통해 한중 양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국회 동북아역사특위 및 외통위 등에서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이 한국의 안보는 물론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동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중국 언론 다수와 국내 언론 일각에서도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거나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독일ㆍ이탈리아 과거사 철저히 반성
하지만 1930년대 상황과 달리 21세기의 일본이 미일동맹 구조 하에서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에 환영 받기는커녕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일본의 위정자들은 같은 패전국 독일과 이탈리아가 걸어온 길을 보며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패전 이후 전쟁을 국가의 정책수단으로 폐지한다는 헌법을 제정하고 군사력 강화를 자제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맹한 이후 군사력을 강화하고, 급기야 걸프전, 이라크ㆍ아프간 전쟁, 리비아 사태 등에 병력을 파견하는 등 국제안보활동을 확대해 오고 있다.
한때 전범국이던 이 국가들의 군사활동 확대에 대해 주변국들이 우려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보다도 이 국가들이 역사문제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웃 국가들과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강제수용소에서 숨진 유대인 희생자들 추모비에 무릎 꿇고 사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징적인 조치와 함께 독일은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실제적인 보상을 시행하고 있다. 1952년 이스라엘과 룩셈부르크 조약을 체결한 이후 유대인 피해자 및 그 유족들에게 2012년 말까지 700억 유로, 즉 97조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불해 왔다. 그에 더해 2012년 11월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보상에서 누락된 유대인 피해자가 있다며 추가 보상 계획을 밝혔다.
이탈리아도 전쟁 과정에서 살상당한 유대인 피해자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념하고 보상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로마 이탈리아 국방대를 방문했을 때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이탈리아 국방대가 2차 대전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 추모 행사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독일과 동맹한 무솔리니 군대도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이후 퇴각하면서 로마 시내에서 유대인을 살상했다. 전후 파시즘을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탈리아는 매년 그날이 오면 국방대 차원에서 당시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과 신뢰구축 노력도 중요
독일과 이탈리아는 양자간 혹은 다자간 차원에서 이웃 국가들과 신뢰 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여러 차례 전쟁의 대상이었던 프랑스와 전후 일관되게 역사적 반성에 기반한 신뢰 구축 노력을 해왔다. 1963년 양국간 협력을 약속한 엘리제 조약 체결 이후, 독일과 프랑스는 청소년 교류 및 대학간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해 미래를 담당할 청년 세대가 역사에 대한 공동인식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구축을 도모하도록 했다. 이런 신뢰 구축에 바탕해 양국은 1989년 심지어 독불 합동여단을 창설해 유럽연합(EU)의 군사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군사적인 신뢰 구축으로까지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독일은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인 폴란드와 러시아에 대해서도 역사문제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다양한 신뢰구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1년 독일은 폴란드 및 러시아와 3국 포럼을 결성해 역사학자들의 3국 공동 역사연구, 3국 대학간 학생 교류에 합의했다.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뢰 받는 ‘보통군사국가’로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눈을 돌려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기울여온 이 같은 노력들을 음미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일본이 주변국들과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중일 캠퍼스 아시아 사업은 대학생들간 상호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의 일부 대학과 시민사회가 한국 대학 및 시민사회와 공동으로 추진해온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도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이 일부 정치인의 그릇된 역사 인식과 태도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일본에게 최선의 안보정책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그러했듯, 일본군 위안부 등의 역사문제에 대해 사실을 인정하고, 다양한 협력을 통해 주변 국가들과 신뢰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것이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아베 정부가 표방한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적극적 평화주의’의 본래 의미에도 부합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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