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 곧 돈인 금융업계에서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대단합니다. 개발 단계에서는 보안을 철저히 하고 그 이후로는 제도의 보호를 받죠. 일종의 저작권과 같은 개념인데요. 업계에서는 이를 ‘배타적 사용권’이라 합니다.
배타적 사용권은 은행ㆍ증권ㆍ보험사에서 독창적인 신상품을 개발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1~6개월 간은 경쟁사들이 같은 상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업계에서 이 제도가 유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카드인데요, 이 때문에 카드 업계에서는 종종 ‘상품 베끼기’ 논란이 일곤 합니다.
실제로 올 초에는 현대카드가 우리카드에 상품 표절 논란을 제기해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우리카드가 창립 1주년을 맞아 출시한 ‘가나다’카드가 현대카드의 ‘챕터2’(지난해 7월 출시)와 비슷했던 거죠.
카드사 상품 개발자들은 이럴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 가며 만든 상품이 성과를 내기 시작 할 때쯤이면 다른 카드사들이 아무 제재 없이 같은 상품을 내니까요.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카드업계의 배타적 사용권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배타적 사용권을 도입하면 이를 획득하기 위한 카드사 간 경쟁이 경쟁사보다 할인 및 적립 혜택을 더 주는 과당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죠. 또 카드 상품은 증권이나 보험 상품에 비해 단순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표절이라 규정할 것인지가 애매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업계 반응입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속상한 건 맞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상품이 그만큼 우월하고 인기가 많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라 생각한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자신의 SNS에 “누군가에게 카피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우리의 미션”이라며 “현대카드가 기준이 되고 그것을 모방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남기며 자신감을 표했습니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거죠. 하지만 누군가의 고생 끝에 탄생한 결과물을 베끼는 데만 매진하면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와 데이터까지는 베낄 수 없으니까요. 이는 어느 순간 폭발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겁니다.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모방보다는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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