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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땅굴은 위협인가

입력
2014.12.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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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레이더 망에 걸리지 않는 첨단 기술, 스텔스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때 아닌 땅굴 논쟁’이 한창입니다. 발단은 지난 10월 한성주 예비역 공군 소장이 모 교회 강연에서 서울과 경기는 물론 목포와 거제도까지 전국적으로 북한의 남침용 땅굴망이 바둑판처럼 존재하고 특히 청와대 주변에만 최소 84개가 있다고 주장한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7월 펴낸‘여적의 장군들’이란 책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수도권 일대에 남침용 땅굴이 있다’는 제보나 주장은 그간 민간이나 종교단체 등에서 수 차례 제기됐고 군 당국의 조사에서‘자연동굴’이나 ‘일제시대 방공호’등으로 판명이 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간 군 생활을 한 장군의 입에서 나온 주장이라 그 무게가 남다르다는 판단 때문인지 이번 ‘장거리 남침 땅굴설’은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도 오르며 주목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21세기에 싱크홀도 아니고 땅굴이라니,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국방부는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북한이 과거 파놓은 땅굴이 존재할 순 있지만 한 예비역 소장의 주장처럼 서울까지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합니다. DMZ에서 서울까지는 약 60㎞인데 땅굴 1개를 팔 때 나오는 폐석(브럭)은 70만톤으로 5톤짜리 트럭으로 14만번이나 퍼 날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서울 인근까지 땅굴을 팠다면 굴착할 때 나오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 토사와 소음도 한미 정찰 자산에 이미 포착됐을 거라고 합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1982년 이후 남침땅굴 민원 740여 건을 접수해 590건을 시추했지만 어떤 징후도 없었으며 탐지작전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방부는 이 같이 안보 불안을 조장하는 허위주장에 대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밝혔고 급기야 지난달 5일 조보근 합동참모본부 국방정보본부장이 한 예비역 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소송전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경기 연천에서 남침용 제1땅굴이 발견된 1974년 11월부터 40년간 북한과‘땅굴과의 전쟁’을 벌여온 군 당국이 이젠 각종 루머와도 전쟁을 벌이는 셈입니다. 1990년 3월 강원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땅굴의 추가 발견은 없는 상태. 다만 군은 현재 DMZ 일대에 땅굴이 추가로 존재할 수 있다고 판단, 27개소를 선정해 지금도 땅굴 탐지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양구편 강원도 양구 해안면(펀치볼)에 위치한 제4땅굴 내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구편 강원도 양구 해안면(펀치볼)에 위치한 제4땅굴 내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량살상무기로 위협하는 21세기에 땅굴이 위협이 되기나 할까요. 제5땅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핵무기까지 보유한 마당에 수십년 전에 파놓은 땅굴은 북한 입장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핵무기는‘위협 수단’에 불과하고‘실질적인 침투 수단’은 땅굴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이 대규모 특수전 부대를 최단시간에 남파하기 위해 땅굴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습 루트로 땅굴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이야기입니다. 1975년 9월 강원 철원에서 발견된 제2땅굴이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을 갖춘데다 시간당 3만명의 병력과 야전포가 통과할 수 있게 설계된 점을 감안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합니다. 1971년 9월 25일,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김일성이 “땅굴 하나가 10개의 핵폭탄보다 더 위력이 있다”며 땅굴 작전을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9ㆍ25교시’는 베트남전에서 활약한 베트콩의 땅굴 작전에 감동한 데서 출발했다고 전해집니다.‘베트콩 1명을 제거하기 위해 총알 10만발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군의 대규모 물량전과 압도적인 화력에 대항해야 했던 베트콩은 땅굴 작전으로 맞섰습니다. 미군이 수색을 펼칠 때는 땅굴에 숨어 있다가 배후를 기습하는 식이었습니다. 미군이 시행착오 끝에 땅굴을 찾아내긴 했지만 입구 크기가 몸집이 작은 베트콩이 들어갈 정도(가로 30㎝, 세로 45㎝)에 불과해 덩치가 큰 미군들은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고심 끝에 체구가 작은 병사들로 구성된 ‘땅굴 수색대(Tunnel Rats, 터널 랫츠)’를 꾸려 투입했지만 첫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죽창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베트콩의 공격에 희생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게다가 땅굴이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지하 3층으로 설계돼 미군 입장에서는 수류탄을 터트리거나 폭탄을 투하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월남전에 비밀리에 참전할 당시 베트콩으로부터 이 같은 땅굴 전술을 배워 DMZ부근에 땅굴을 팔 때 적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평화공세와 무력도발을 번갈아 감행하는 북한의 화전양면전술은 바로 이 땅굴을 파면서부터 본격화됐습니다. 1971년 8월 20일 남북 적십자회담이 처음 열리는 등 남북대화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뒤인 9월 25일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데 이어 분단 27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7ㆍ4남북공동성명(1972년)에 합의하면서도 북한은 땅굴작업을 지속하며 도발을 준비해왔습니다. 올 10월에도 ‘권력 실세 3인방의 깜짝 인천 방문’으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3일 뒤에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북한이 이 같은 화전양면전술을 멈추지 않는 한 군 당국의‘땅굴과의 전쟁’도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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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주 예비역 공군 소장 교회 강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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