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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이후 항공사들은 침묵 중

입력
2015.01.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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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바비킴이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대한항공 기내(KE 023)에서 난동을 벌인 사건이 알려진 9일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습니다. 미국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고, 국내에서도 경찰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번 일과 관련해 대한항공 측 실수가 있었던 점도 감안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한항공 측 설명에 따르면 바비킴의 보너스 마일리지를 잘못 파악한 대한항공 발권 카운터 직원이 애초 비즈니스석을 예약했던 바비킴에게 이코노미석을 안내했습니다. 이를 뒤늦게 탑승한 뒤에야 바비킴이 알고 교체를 요청했고, 환승 카운터에서 이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 카운터 직원도 역시 마일리지를 잘못 알고 교체가 어렵다고 했고 결국 이코노미석을 타야했습니다.

물론 기내 난동은 큰 문제기 때문에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직원들의 실수가 있었으니 무작정 승객(바비킴)의 행동을 강하게만 비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가수 바비킴
가수 바비킴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런 대한항공의 모습은 몇 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 승무원을 때린 남자 승객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상 처음 경찰에 고소까지 했습니다. 대한항공은 당시 보도자료까지 내고 ‘라면 상무’ 사건 이후에도 기내에서 폭행, 협박 등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줄지 않는다며 이와 관련해 앞으로는 공항에서 즉각 공항경찰대에 넘기거나 고소고발 등을 통해 엄중히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기내에서 폭력을 저지른 승객 대다수가 ‘음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정상 참작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 동안 법적 제재를 자제해왔지만, 앞으로 항공기 운항 안전 확보 차원에서 문제 승객을 모두 현지 경찰에 넘길 방침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 대한항공은 달라졌습니다. 바비킴 사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폭행이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해당 승무원이 어떤 처벌이나 조치를 원할 지에 달렸다”고만 했을 뿐, 회사가 직접 나서서 뭔가 조치를 할 계획이 없음을 내비쳤는데요. 바비킴은 기내에서 서비스한 와인을 여러 잔 마시고 취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소극적 태도는 물론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5일 일어났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의 여파 때문으로 보입니다. 회사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뜻대로 알려지기나 이해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급적 반응을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대신 기회만 되면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5일 열린 신년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까지 사과를 했습니다.

땅콩 회황이 알려졌던 초기에 했어야 할 사과를 뒤늦게 한 것이라 ‘만시지탄’이지만 그룹 총수가 직원들에게 사과를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미 사건의 당사자인 큰 딸 조 부사장은 구속 수감이 된 상태에서 아버지 조 회장은 사과를 하고 신년사를 읽다 울먹였고 결국 지창훈 사장이 나머지 신년사를 대신 읽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대한항공의 경쟁사 아시아나항공도 요즘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한항공은 조 회장까지 나서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 국토교통부의 운항 정지 조치가 ‘봐주기’라며 강한 처벌을 주장하며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대한항공을 포함해 전 세계 240개 항공사를 대표하는 국제운송항공협회(IATA)에서도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운항정지보다는 과징금 조치를 해달라며 국토부에 선처를 호소했지만 유독 대한항공은 강한 처벌을 주장했던 것인데요. 당시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에 대해 “아무리 경쟁자라지만 좀 과한 것 아니냐”며 “저러다 비슷한 상황이 자신들에게 벌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요. 대한항공은 땅콩 회황 사건의 여파로 운항정지 조치를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연히 어디다 하소연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운항정지 조치를 미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당분간 운항을 계속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황이 뒤바뀐 것이죠. 아시아나항공 역시 하고 싶은 말도 많을 테지만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말이었습니다. 언뜻 봐서는 경쟁사가 잘 안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득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업계 전체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겠죠. 그러다보니 불과 1달 전까지만 해도 경쟁사의 작은 흠도 서로 더 알리려고 경쟁하던 항공업계였지만 지금은 상대방 흠도 그냥 모른 척 합니다. 오히려 감싸주는 분위기입니다. “(대한항공의)상황이 빨리 해결이 됐으면 한다”는 아시아나항공 관계자의 말이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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