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속 원인터내셔널의 모델 대우인터내셔널
서울역 시대 마감하고 26일부터 '송도 시대'
‘장그래’가 서울역을 떠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그래가 드라마 ‘미생’ 속에서 다녔던 무역회사 ‘원인터내셔널’의 모델인 대우인터내셔널이 서울역을 떠나 인천 송도 신도시로 이사를 갑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체 직원 8,000여 명 중 국내 직원 1,000명 여 명 은 26일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 동북아무역타워(NEATT)의 9~21층에서 업무를 시작합니다.
이로써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생에 자주 등장했던 옛 대우빌딩(지금의 서울스퀘어)과 바로 옆 연세빌딩까지 30년 넘는 서울역 생활을 마감합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서울역을 떠난 것은 단순히 한 회사가 이사 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하 2층, 지상 23층의 대우빌딩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이자 ‘서울의 관문’이었습니다. 산업화 시절 서울의 꿈을 안고 상경한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대우빌딩은 당시 4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청와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4년 도 안돼 완공된 대우빌딩은 한국경제의 압축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 방’에는 대우빌딩을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 제일 높은 것.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여명 속의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을, 새벽인데도 벌써 휘황찬란하게 켜진 불빛들을,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쳐다본다”고 묘사했습니다.
대우빌딩은 김우중 회장과 대우의 화려했던 세계경영의 처음과 끝을 담고 있습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967년 김우중 회장이 창립한 대우실업(주)을 모태로 했고, 대우실업은 1982년 대우 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죠. 그러다 2000년 대우그룹이 몰락해 대우의 무역 부문을 인적 분할하며 대우인터내셔널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2007년 모건스탠리가 대우빌딩을 1조원 가까운 돈으로 사들여 ‘서울스퀘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은 연세빌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미생 기획을 맡은 CJ E&M 이재문PD는 “국내 무역상사의 대표격인 대우인터내셔널을 미생의 부대로 삼고 싶어 두 차례나 회사 측에 제작 협조를 요청했다”며 “특히 대우빌딩은 외환위기 이전 대우그룹의 본산이자 상사의 전성기를 몸으로 겪어낸 건물로 한국 경제의 상징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우의 몰락은 곧 한국 경제의 몰락을 의미하던 시대도 있었고 한 시대와 경제를 상징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어렵게 서울스퀘어 안으로 들어왔다”며 “서울스퀘어 한 층을 통째로 촬영에 활용할 수 있었는데 대우인터내셔널 측이 큰 도움을 주셨다”고 덧붙였습니다.
2010년 10월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 그룹에 편입됐습니다. 이번 송도 이사도 포스코 그룹 계열사들이 다함께 이사를 하면서 결정된 일입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입주하는 NEATT는 높이 305m(해발 312m), 총 71개층 규모의 현존 국내 최고층 빌딩으로, 인천 송도국제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시설입니다. 그런 최첨단 새 건물로 이사를 들어가는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입사 20년 차 간부급 직원은 “대우하면 서울역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데 그런 서울역을 떠난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며 “회사 차원의 기념 행사 같은 것은 없었고 직원 개개인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은 SNS 등에 떠나는 서울스퀘어, 연세빌딩의 사진과 함께 각자의 소회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회사 측은 송도로 이사 가는 것 때문에 직원들이 혹시 회사를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출퇴근에 어려움이 없도록 서울ㆍ경기 주요 지역 24개 노선을 잇는 통근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라며 “인근보다 저렴한 가격에 분양이 가능한 690세대 안팎의 사원조합 아파트와 1인1실의 기숙사 200실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인천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이주비를 지원하고 직장 어린이집도 가동합니다. 2012년 7.7%, 2013년 7.2%였던 직원 퇴직률이 지난해 11월까지 7.1%을 기록하면서 송도 이전이 직원들에게 아직까지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물론 앞으로 송도 생활이 얼마나 만족스러울 지에 따라 이 수치도 바뀌게 되겠죠.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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