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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화장실은 왜 '접근 금지구역'이 됐나

입력
2015.02.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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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이 왜 잠겨있는 거예요?”

얼마 전 모 부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입니다. 군 참모의 안내를 받고 급하게 찾은 부대 건물 1층 여자 화장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손잡이를 대여섯번 돌렸을 쯤 이를 알아챈 여군이 달려와 열쇠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고장난 것도 아닌데 왜 멀쩡한 화장실 문이 잠겨있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여군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습니다. 순간 화장실 문 한가운데 크게 박힌 ‘접근 금지’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군 화장실은 왜, 열쇠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접근 금지구역’이 됐을까요.

지난달 27일 부하 여군을 관사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현역 대령이 긴급 체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육군 17사단장(소장)이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무관용 원칙으로 엄벌에 처하겠다”며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터라 군 당국도 그랬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컸습니다. 무관용 차원에서 작년 11월 여군을 상습 성추행한 육군 중령에게 창군 이래 처음으로 성 군기 위반에 따른 계급 강등 조치가 내려진데다 문제의 17사단장도 연말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징역 3년을 구형한 군 검찰이나 국민의 눈에는 턱 없이 낮은 형량이지만 현역 장성에 대한 실형 선고가 공식 기록상 최초였기에 당시 군 내부적으로는 충격이 꽤 컸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명예를 중시 여기는 군에서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얼마나 더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군내 성범죄가 없어질까’. 답답함을 토로하자 육군 영관급 장교는 “나도 군인이지만 아직도 군에서 여군을 동료가 아닌 여자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여군이 창설(1950년 여성 의용군)된 지 60년이 넘었고 여성 장군과 함장, 전투기 조종사 배출은 물론 기갑과 포병, 방공 등 사실상 육해공군의 모든 병과가 여군에게 개방됐는데도 군에서 여군은 아직도 동료가 아니라 ‘제복 입은 여성’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년 전 이맘때쯤 공군ㆍ육군사관학교에서 불거진‘여생도 성차별 논란’도 이런 인식을 뒷받침합니다. 지난해 2월 공사가 62기 졸업식을 앞두고 수석졸업생인 여생도에게는 2등상인 국무총리상을, 대통령상은 차석인 남생도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간 관례를 뒤집은 것이지요. 당시 공사 측은 ‘여생도가 체력검정 등급이 낮았다’고 해명했고 일각에서는 성차별이 아닌 ‘파일럿 전공(차석 남생도 전공)우대’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빗발치는 여론에 재심의에 들어간 공사는 결국 결정을 바꿨습니다. 3군 중 가장 먼저 여생도를 선발(1997년)할 정도로 여군에게 호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공사였지만 ‘성 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얼마 뒤 육사도 일반학 비중을 낮추고 군사학과 군사훈련, 체육의 비중을 높이는 등 성적산출방식을 여생도에게 불리하게 변경해 ‘성차별 논란’에 직면했습니다. 생도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편이 공교롭게도 2년 연속 여생도 수석 졸업을 배출한 직후에 이뤄진 탓입니다. 여군 배제 정책이다, 여풍 견제 꼼수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육군이 최근 성범죄 근절 차원에서 검토 중인 ▲남녀 군인 단둘이 차량 이동 금지 ▲이성 군인과 접촉 시 한 손 악수만 허용 ▲남자 군인 혼자서 이성 관사 출입 금지 ▲남녀 군인 단둘이 같은 사무실에 있어서는 안 되며 부득이한 경우 출입문을 열어놓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성 군기 관련 행동수칙’에도 ‘여군을 동료로 보지 않는’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이 대책들이 자칫하면 여군을 고립시켜 정당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전을 위해 같은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남녀 군인이 1대 1로 탈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는 작전에서 배제돼야 하고 이런 일이 쌓이다 보면 대다수가 여군과 업무 파트너가 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군 배려가 아닌 남군이 성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대책들인 셈입니다. 여군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는 조치들이지요.

얼마 전 방문했던 부대의 여군 화장실이 열쇠 없인 갈 수 없는 접근금지구역이 된 것도 성 군기 위반 사건 발생 여지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한 부대 차원의 고육지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열쇠를 가지고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한 여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상가 화장실도 아니고 엄연한 일터 화장실인데 말입니다.

올해 여군 1만명 시대를 앞두고 국방부는 현재 6.7% 수준인 여군 장교 비율을 2015년까지 7%로, 4.5%에 그치는 부사관 비율은 2017년까지 5%로 달성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병역 자원 감소로 여군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정작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지난해 특전사는 40년만에 부대가(歌) ‘검은 베레모’에서‘사나이’를 뺐습니다. 단순히 여군을 배려하는 차원을 넘어 30대 1의 경쟁을 뚫고 특전사가 된 여군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국방부도 새로 만들어지는 군가에는 ‘사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군 수뇌부, 간부는 물론이고 말단 장병들 스스로가 여군을 3성 장군 출신의 모 의원 표현처럼 ‘하사 아가씨’나 ‘군의 액세서리’가 아닌 전우애를 발휘할 진정한 동료로 여겨 본 적이 있을까요. 여군 1만명 시대를 앞두고 군이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자문자답할 때가 됐습니다. 여군이 제복 입은 여성인지, 군 동료인지를.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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