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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라오스의 행복교훈

입력
2015.02.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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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행복’은 착각

양적팽창 더는 안 돼

인간중심 경제로 바꿔야

라오스에 다녀왔다. 최빈국답게 가난이 일상인 곳이다. 이방인 눈엔 불편과 불결, 그리고 불행으로 구체화된다. 착각과 오해는 곧 깨진다. 외부의 시선이 만들어낸 편향일 뿐 이 땅 주인들은 아니다. 평온한 느린 삶에 해맑은 웃음이 넘친다. 절대빈곤이건만 다툼과 동냥은 없다. 속도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 ‘행복’을 말한다. ‘성장→행복’의 한국과 다른 시공간이다. 성장만이 행복일 수 없다는 라오스의 반문은 이방인의 고민을 켜켜이 짓누른다. 한국의 불행 단초를 풀어낼 힌트일까 싶어서다.

한국은 끝없이 내달렸다. 치열한 뜀박질엔 쉼조차 없었다. 속도, 덩치, 숫자를 좇아 빨리 멀리 달려왔다. 덕분에 많이 얻고 누렸다. 다만 더는 아니다. 정지신호 앞에 선 듯 해서다. 끌어낼 힘도, 내달릴 길도 막막하다. 인구변화ㆍ재정압박ㆍ성장지체의 삼중고에 뒷덜미를 잡혔다. 겪어보지 못한 대형악재다. 되돌아보니 삐걱대는 고장신호는 벌써 울렸다. 먹었건만 배고프고, 가졌건만 모자란다. 긴장과 갈등, 대결만이 팽팽하다.

활로가 절실하다. ‘살아갈 길’을 찾는 게 과제다. 지금까지처럼 내달릴 수는 없다. 더는 아픔을 내버려둘 수도 없다. 새로운 궤도 마련이 필수다. 그 지향은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갈팡질팡, 우왕좌왕은 당연하다. 오리무중과 맞물린 대변혁의 혼돈ㆍ혼란기를 통제ㆍ주도할 새로운 국가운영을 위해서라면 잠깐 멈춰 쉬는 것도 좋다. 관성에 휘둘려 속도를 고집하면 뒷감당만 더 힘들어진다. 잘못된 안내판과 흐릿한 지형도는 차분하게 다시 그리는 게 옳다. 길안내는 뚜렷해야 잡음이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다. 시대는 새롭고, 환경은 변했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과거의 얼개라면 고치는 게 맞다. 첫출발은 ‘한국모델’의 재검토다. 양적팽창을 지지하던 고도성장적인 고용ㆍ임금ㆍ가족 모델의 수정이 필요하다. 덜 벌고도 더 웃는 작동논리의 안착이다. 성장일변도의 자본주의를 내려놓자는 얘기다. 현실을 감안컨대 성장지향을 버릴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틀린 건 더더욱 아니다. 시장거래와 사유재산은 생활향상에 기여했다. 지나침이 문제일 뿐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시장만능ㆍ효율지상주의는 이 정도면 넘친다. 천민자본적인 급행열차는 멈춰 설 때다. 무한경쟁ㆍ승자독식(신자유주의) 40년이면 할 만큼 했다. 더 가봐야 뻔하다. 실패와 불안으로 100년 앞길을 방해해선 곤란하다. 아담 스미스의 가르침도 그렇잖다. 시장자유 이전에 인간도덕이 먼저였음을 설파했다. 갑질, 유착은 가르치지 않았다. 불행의 단초는 인간상실이다. 교육, 의료, 환경, 안전, 복지가 거래되면서부터다. 존엄과 자유를 위한 인간중심 경제학이 실종된 여파다.

라오스의 교훈은 명확하다. 비유컨대 국내총생산(GDP)의 내려놓기다. 양적인 숫자놀음과 질적인 행복총량이 무관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다. 절름발이 자본주의를 교정하려는 시도는 많다. 8년 전 프랑스정부는 맹목적인 양적성장의 부작용에 주목, ‘스티글리츠 위원회’를 만들어 성장과 불행의 난센스에 도전했다. “GDP는 커졌는데 왜 더 불행해지는지”가 화두였다. 결론은 못 냈지만 시도는 참신했다. 8년 후 지금 그 답을 라오스에서 찾는다면 억측일까 자문한다. 절대빈곤 속의 라오스는 웃고 있다.

고속버스는 효율적이다. 경제성장의 상징답다. 다만 효율범위는 발착지점에 한정된다. 뜨고 닿는 곳이 아니면 소외된다. 주변경치는 속도감에 취한 물상일 뿐 곧 망각된다. 주위를 둘러볼 경유도 정차도 없다. 군집과 성장은 단 두 곳이다. 반면 완행버스는 느리다. 그래도 모두를 커버한다. 달려오는 승객이면 기다려줄 수 있다. 느림을 택하고 자주 서니 중간지역에도 사람이 내린다. 작게나마 상권이 선다. 그러면 드넓게 쓰인다. 기계적 효율성에서 비켜선 완행특유의 다양성의 힘이다.

증세논쟁, 성장논박이 한창이다. 묘책은 없다. 똑똑해진 국민만 갑갑해한다. 이럴수록 멀리 내다보는 건강한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집이 잘못되면 세간은 어긋나고 가족은 슬퍼진다. 허울 좋은 성장 슬로건으로 탐욕의 눈높이만 높여봐야 무용지물이다. 행복은 결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한국적 행복모델을 고민할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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