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하르츠 개혁
월급 54만원 이하 미니잡 확대 중점
비숙련 노동 양산… 노후 빈곤 우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임금인상 억제ㆍ노동시간 단축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급상승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 성공 모델로 제시한 독일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의 핵심은 고용유연화다. 모두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서 경기불황의 돌파구를 찾았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해소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한 우리 정부에게도 좋은 본보기다. 그러나 한쪽에선 여성ㆍ노인ㆍ청년 등 노동시장 소외계층의 단시간 저임금 일자리가 굳어졌고, 노동시장 양극화 또한 심해졌다고 지적한다.
하르츠 개혁과 바세나르 협약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려 무턱대고 좇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독일, 네덜란드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 비정규직-정규직의 차별 근절 노력 없이 양적인 시간제 일자리만 늘리는 것은 노동환경 악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저임금 비숙련 노동 되풀이
하르츠 개혁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일 내에서도 엇갈린다. 하르츠 개혁은 2003년 슈뢰더 총리가 10%대 고실업ㆍ경기침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다.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월급 450유로(약 54만원) 이하 일자리(미니잡) 확대 ▦창업한 기업에 한해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한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신규 고용시 해고보호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 규모를 기존 5인 이하에서 10인 이하로 완화하는 내용의 고용유연화 방안이 담겼다.
미하엘 휴터 독일 쾰른 경제연구소장은“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개혁 전후 저소득층과 중산층 비율이 14%, 50%로 큰 변화가 없는 만큼 소득불평등 역시 악화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인건비가 줄어 독일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독일의 고용인구는 1991년 3,880만명에서 2013년 4,160만명으로 늘었고, 실업률은 2005년 11.3%에서 2013년 5.3%로 떨어졌다. 만 25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2013년 기준 7.8%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낮다. 사회보험에 의지해 살던 비경제활동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이끌어 낸 하르츠 개혁은 고용 기적의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미니잡은 태생적으로 저임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워킹푸어를 양산하고, 중기적으로는 실업과 파견ㆍ용역 등이 반복되는 비숙련 노동이 계속 되며, 장기적으로는 노인빈곤을 초래해 사회보장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우려도 이런 한계에서 비롯됐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기업 부담을 줄인다는 미명하에 그 짐을 사회에 전가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달 25일 방한한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한스뵉클러재단 경제사회연구소 전 소장은 “미니잡으로 고용 불안정성이 커졌고, 여성들의 비숙련 노동도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미니잡 종사자 수는 2003년 598만명에서 2013년3월 733만명으로 늘었는데, 그 중 62.5%(458만명)이 여성이다. 미니잡 확대는 주유소, 청소, 매장ㆍ사무보조 업무에서 주로 이뤄졌다.
최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여성 중심 확산
통계청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노동자 비율(2013년 기준)은 50.8%다. 시간제 일자리의 비약적 확산은 1982년 노동계ㆍ경영계ㆍ정부가 합의한 바세나르 협약의 영향이 컸다. 임금과 물가가 연동됐던 네덜란드 경제에서 노동계의 지속적인 임금상승 요구는 대규모 실업과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고, 1970년대 후반 네덜란드는 저성장ㆍ고실업ㆍ과잉복지의 문제에 직면했었다.
이런 구조적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바세나르 협약이다. 노조는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주 40시간→38시간)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며, 정부는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위기의 원인이 됐던 물가연동 임금인상제 역시 폐지하기로 했다.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역시 1982년 39.3%에서 2011년 73.1%로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 중 여성 비중이 65%에 달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최근엔 시간제 일자리가 질 낮은 저임금 노동으로 변질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네덜란드에서는 ‘제로 아워(Zero Hour)’ 때문에 새로운 노사갈등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로 아워는 1주일에 15시간 미만, 미리 정해놓은 근로시간 없이 사용자가 호출할 때마다 나가서 일하는 초단기 시간제 일자리다. 매주ㆍ매월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해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급여도 최저임금 수준이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슈바르츠 아르바이트’(검은 일자리)가 저학력 여성과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검은 일자리는 주로 사무ㆍ매장 보조 등에 해당되는데, 미니잡보다 낮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8.68유로ㆍ2012년 기준)을 받는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나타난 고용의 기적은 임금억제ㆍ노동시간 단축으로 정규직 남성의 일자리를 시간제 여성으로 대체한 결과”라며 “성공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차별 없애야
그럼에도 노동 전문가들은 ▦시간제 일자리 차별철폐 정책 법제화 ▦근로조건 개선 노력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ㆍ사ㆍ정 대타협 정신 등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의 월급 격차가 3배 이상 차이 나는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임금ㆍ초과근로수당ㆍ보너스 등 모든 고용조건에서 전일제와 시간제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독일도 2001년부터 ‘단시간 근로 및 기간제 근로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 선임연구위원은 “독일과 네덜란드의 대타협은 결과를 떠나서 노동계ㆍ경영계ㆍ정부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로 고용률을 높이자’는 공통된 문제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공감대 없이 대타협을 이뤄내긴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3월 말을 대타협 기한으로 정하고 노동시장 구조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나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 차이로 진통을 겪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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