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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서 적으로… 천정배-권은희 '얄궂은 인연'

입력
2015.03.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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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과장이라면 비록 내가 공천을 못 받더라도 상관없다.”

지난해 여름 천정배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7.30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공천이 무산되자 무소속 출마를 해야한다는 측근들에게 권은희라면 괜찮다는 말로 무소속 출마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합니다.

천 전 고문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송파 을 지역에 출마했다 낙선 한 뒤 광주로 내려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천 전 고문 측은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천 고문이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국회 입성은 떼 논 당상이라고 봤던 것이죠.

그러나 당 지도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은 전략 공천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당내 반발’이라고 했습니다. 의원 45명은 “중진들은 당선되기 쉬운 지역에 가면 안 된다”는 연판장을 만들어 대표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천 전 고문을 지목한 것이었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었죠.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당내 인사는 “천정배라는 인물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로 입성할 경우 곤란해 지는 분들이 많았죠”라고 말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첫 원내대표,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 등 화려한 경력에 인지도가 높은 천 전 고문의 등장은 당장 당 지도부나 광주의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주도권을 뺏길 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당 내 분위기는 ‘천정배 배제’ 쪽으로 갔고, 천 전 고문은 권은희라는 이름을 꺼냈습니다.

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왼쪽사진)과 천정배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왼쪽사진)과 천정배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은희 의원은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맡았는데요. 특히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한 축소, 은폐를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권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비판하자, 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당력을 총동원해 ‘광주의 딸’ 권은희 과장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하며 ‘광주의 딸’이란 닉네임까지 얻었죠. 광주 출신으로 전남대 법대를 나온 권 의원은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5년 경정 특채로 경찰에 입문해 경기 용인서 수사과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당시 나이가 만 32세로 ‘사시 출신 최초 여경’이자 ‘최연소 여성 수사과장’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권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자 지난해 6월20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해 ‘정계 진출 설’이 나왔습니다.

천 전 고문이 특별한 인연도 없고 일면식도 알려진 권 의원의 이름을 꺼낸 것을 두고 당시 천 전 고문 주변에서도 상당히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한 당내 인사는 “천 고문이 경선도 없어지고 공천을 받지 못할 상황에서 주변에서는 억울해서라도 무소속 출마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며 “하지만 당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 결국 출마를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희생’이 좀 더 의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권 의원 이름을 꺼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 전 고문 입장에서는 어차피 자신이 공천을 못 받고 제 3자를 전략 공천 한다면 스스로나 대외적으로 납득이 갈 만한 사람이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당내 인사는 “참신하면서도 정권의 잘못에 용감하게 맞섰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일부 당 관계자는 "설사 천 전 고문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더라도 광주에서 권 의원의 인기는 상당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 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권 의원은 광산을에 공천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그런 권 의원이 공천을 받은 후 광산구청에서 정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천 전 고문의 전 보좌관을 찾아갔습니다. 권 의원은 기자에게 “지역 사정도 잘 알고 보좌관 경험도 있어 좋은 평가를 받는 분이라고 추천을 받고 있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보좌관은 천 전 고문과 인연이 있기 때문에 다시 국회에서 일을 하려면 일단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했고, 천 전 고문은 흔쾌히 “가서 잘 도와주라”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후 당 고문과 초선의원으로 한 지붕 아래 있던 천 전 고문과 권 의원의 인연은 4.29 재보선을 앞두고 천 전 고문이 탈당 후 광주 서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나서면서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결정에 따른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천 전 고문이 당분간 당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죠.

그러나 이제는 천 전 고문이 권 의원이 속한 새정치연합에 칼날을 세우고 공격을 하고 권 의원은 수비를 해야하는 상황이죠. 야권 관계자는 “천 전 고문이 당선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광주을 비롯한 호남의 여론은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천 전 고문을 중심으로 또 다른 세력이 만들어질 것이고 당장 광주 지역구 의원들의 국회의원 배지 지키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특히나 국회의원 경험이 2년 남짓이고 전략공천으로 치열한 경선과 선거 과정에 대한 경험도 없는 권 의원은 비록 현역의원이라 해도 더더욱 어려운 싸움이 되겠죠.

당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인연도 그렇고 천 전 고문의 보좌관이었던 권 의원 보좌관의 애매한 상황을 두고 정치를 하면서 가장 마주하기 싫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괜시리 그런 인연 탓에 우리가 광주서을 선거 운동을 소극적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며 “(천 전 고문이) 안 나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오셨으니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해야죠”라고 말했는데요. 권 의원은 다른 광주 지역구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당의 요청에 따라 광주 서을에서 천 전 고문을 상대할 조영택 후보 캠프에 보좌진 한 사람을 파견보냈다고 합니다.

다들 지역구 의원들도 그렇지만 요즘은 틈만 나면 광주에 내려가 지역구 현안 챙기고, 지역 주민 만나느라 쉴 틈 없는 권 의원은 이제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비록 옆 동네지만 광주 서을에 가서 ‘천정배 바람 잠재우기’에도 힘을 쏟아야 될 것 같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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