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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수덕사, 채공의 기억

입력
2015.04.0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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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근처, 즐겨 찾던 굴국밥집이 어느새 업종을 곰탕집으로 변경해버렸다. 더 이상 옛 연인을 떠올리며 매생이국밥을 짓씹는 청승을 부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리적 변화는 이렇듯 종종, 기억의 말소를 채근한다. 어쨌거나 곰탕 한 그릇. 소위 ‘오픈발’을 막 떨쳐 마지않는 신장개업 집에서 곰탕 하나를 호기롭게 시켜본다. 송송 썰린 대파로 수북이 덮인 그릇이 식탁 위에 놓인다. 식욕은 단번에 줄행랑 친다. 동그란 대파를 하나하나 밥공기 뚜껑으로 건져 올린다. 파, 마늘, 양파 등속의 향신채를 먹지 못하는 촌스런 식성인 탓이다. 어릴 적엔 먹는 족족 토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니 누군가 ‘스님 식성’이라 타박하면, 끄덕여 수긍하는 편이다. 생뚱맞게도 전생을 믿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가야산 수덕사에 열흘 간 머물렀다. 템플 스테이를 추천 받았으나 일부러 노동을 자처했다. 그땐 그저 잡념과 강박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후원이라 불리는 절간 부엌에 배정 되었다. 열흘간 세속의 신분을 훌러덩 벗고 그렇게 ‘말단 채공’으로 살았다. 온갖 채소를 씻고 깎고 다듬는 것이 내 소임이었다. 새벽3시에 일어나 매끼 100인분 이상의 나물 반찬을 준비했다. 처음 이틀은 감자 껍질을 산처럼 쌓아 올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창백한 관념을 벗어 던진 채 끈적한 땀을 내뿜는 노동이 심신의 건강을 돋궈줄 것 같았다. 허나 사흘째부터는 ‘시지프스’의 낙담이 절로 이해되었다. 바위를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렸던 시지프스처럼, 감자 깎기로는 도대체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한 포대를 깎고 숨을 돌릴라 치면, 곧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마냥, 바로 다음 끼니 또 다른 포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익명의 채공으로 감자 깎기를 배워가고 있을 때, 큰 스님께서 후원을 직접 방문하셨다. 맑고 깊은 아우라가 주위를 따뜻이 감싸는 것이 신기했다. 인사를 드리려는데 스님께서 대뜸 허를 찌르셨다. “너 같은 ‘초짜’가 왜 후원에 앉아있누? 기운이 영 다른 사람인데…” 그 뒤론 틈틈이 큰 스님을 직접 찾아 뵐 수 있는 황송한 기회를 누렸다. 녹차를 우려 주시며 마음에 힘이 되는 말씀을 들려 주셨고, 어느 땐 노래도 함께 불렀다. 스님께선 “이 순간 이 자리를 늘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하셨다. “하늘도 나를 반기고 땅도 나를 반기니 머리를 숙여 욕심을 비우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고도 하셨다. 억장이 무너졌던 그 시기, 큰 스님께서 내어주신 따뜻한 마음이 큰 위안이 되었다.

열흘 간 수덕사 생활을 마치고 다시 상경하던 때, 큰 스님께서 “네 기운과 어울린다”며 염주를 하나 골라 내어주셨다. 단단한 염주알은 둥근 원력으로 부드럽게 엮여 있었다. “너는 전생에 수덕사와 인연이 있다.” 단언하시는데, “전생을 꿰뚫어 본다던 도사도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다”며 신이 나 대꾸했다. 도사에 따르면, “고려의 왕족인 여인이 부마를 여의고 비구니가 되었는데, 왕실에서 정해준 사찰에 들어가지 않고 외딴 암자에 은거하였다”는 것이었다. 여긴 ‘왕실이 정해준 사찰’이라 오지 않았을 거라며 스님께 겁도 없이 까불거렸다. 큰 스님께선 허허 웃으셨다. 한 달에 한번씩은 수덕사에 내려와 수양 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지만, 그 뒤로 한참을 지키지 못했다.

다시, 내 앞에 놓여있는 곰탕 한 그릇. 수북이 쌓여있는 동그란 대파를 촌스럽게 하나하나 골라내며, 수덕사와 고려여인의 전생과 굴국밥집을 한꺼번에 떠올린다. 전생은 저만치 가만히 머물러 있는데, 이생은 이리도 기억의 소멸과 물리적 변화를 재촉한다. 이생이 전생이 되어있을 때 다시 묻고 싶다. 머무는 것이 옳았을까, 아님 뒤돌아 떠나야 했을까. 이런 된장, 고추를 된장에 찍어 아삭 깨어 문다. “별거 있었겠어? 그저 흐르는 대로….” 그러니 이 곰탕집엔 다시 찾아오진 않을 것 같다. 대파가 너무 수북하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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