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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예술과 인성

입력
2015.05.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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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미술영재원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중등부 영재들의 면모가 무척 흥미로웠다. 사고와 행동이 평범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기 때문이다. 쉼 없이 드로잉을 하는 아이, 강의와 무관한 듯 아예 선생님 면전에서 잠을 자는 아이, 풍기는 포스만으로도 이미 예술가인 아이들까지 다양했다.

그 중 한 학생은 자신이 예의도 없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어하고, 제멋대로 살고 싶다고 했다. 다 귀찮고 하기 싫지만 그래도 잘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말꼬투리 잡기, 발표하기, 그림 그리기라고 했다. 자신은 사람을 한 번 보면 단번에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되며, 단점을 잘 지적하고, 말을 하다 보면 꼬투리를 잘 잡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언쟁 속에 토론실력이 늘어났고, 발표도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항상 머릿속에는 그림생각밖에 없으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호언했다. 자기소개를 끝내고는 질문이 있냐고 묻더니, 질문이 있어도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다. 그러나 여전히 긴장과 떨림이 느껴지는,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또 다른 여학생은 걸걸한 목소리로 자신은 화도 잘 내고 욕도 잘하는데 수업시간에 욕이 튀어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의도와는 달리 위협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학생만이 아니라 20명의 아이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무척 화를 잘 낸다고 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주변에 전하니, 역시 예술 하는 아이들이라 다르다. 자유로운 사고, 기존의 틀에 묶이지 않으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창의적 예술가들의 당돌함이라는 평가에는 일단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에도 뭔가 안타깝고 불편한 느낌이 남았다. 예술이 기성의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창의적 태도를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배려와 예의를 잃거나 상대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그래도 된다는 식의 사고가 허용된다면 그 예술은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당돌한 발상과 일탈의 상상력은 존중 받아야 하지만, 예술에 표현되는 사고의 자유로움이 일상의 사회적 관계를 파괴해도 된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중학교 1, 2학년이니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의 발동과 성숙한 사회적 관계를 일치하여 풀어내기란 어려운 때이다.

하지만 기성의 세계로부터 일탈하는 예술적 발상이 타인과 관계 맺기에 실패해도 괜찮다거나 자신을 포함해서 누군가의 영혼과 인격에 상처가 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건 자신에게 중대한 문제가 된다. 예술가가 갖는 그저 특수한 기질로 여기고 방치한다면, 하나의 예술가를 길러내려다 자칫 인간을 망가지도록 내버려두는 미필적 고의가 될 수도 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였지만 예술보다 더 귀한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예술은 그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또한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은 다르다. 좋은 그림을 그리는 좋은 작가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런 예술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사회 윤리적 덕목들로 풍성하게 길러진다면, 그야말로 예술로 세상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며, 홀로 있지 않고 함께 한다는 인간적인 메시지를 잘 전할 것 같다.

예술은 결국 그 사람의 사람됨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다. 재능은 키우나 사람됨을 잃게 하는 교육, 그건 예술을 하건 무엇을 하건 인간 자신에게 결국 불행이 된다. 자라나는 어린 꿈나무들이 인간적 품성을 잃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구축하며, 예술의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시선과 조언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예술뿐 아니라 예술을 하고 있는 자신과, 나아가 인류를 위한 희망이 되리라 생각한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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