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생은 누린 세대다. 대입ㆍ취업 다 쉬웠고 위기도 비껴갔다. 부채의식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이기심을 이타심이 꺾기 어렵고 미래는 과거를 덮는다. 자기부터 살고 보는 법이다.
“얼마 전 몇 년 후배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선배,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대가 누군지 아세요.” “장년층이상 아니겠어. 특히 60대.” (…) 하지만 후배의 얘기는 전혀 뜻밖이었다. “젊은 애들은 60대 이상이 아니라 40대 중후반 세대를 더 고까워 한대요.” 40대 후반이면 딱 내 또래다. (…) 이유를 물어봤다. “젊은 친구들은 지금 40대(후반)를 모든 걸 다 누린 세대로 봐요. 지들은 다 누렸으면서 고생한 척하고 때때로 잔소리까지 하니까 더 얄미운 거죠.” (…)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1980년 대초는 역사상 대입문턱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이 도입한 졸업정원제(대학졸업정원 대비 130%를 선발하는 제도)에 따라 대입 문호는 넓디 넓었다. 철저한 암기 위주의 객관식 학력고사 점수와 약간의 내신점수만 합산하는 가장 심플한 전형 방식이 적용됐기 때문에, 선배들처럼 본고사 준비로 씨름할 필요도 없었고 후배들처럼 수시와 정시, 논술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 취업도 비교적 수월했다. 비용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라 주요 그룹마다 매년 수천~수만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눈높이만 살짝 조절하면 취업재수는 필요 없었고, 취직은 곧 정규직이었다. 실업률이 2%를 밑도는 완전고용의 시대였다. (…) 회사 다닌 날보다 다닐 날이 훨씬 적은 지금까지도 축복은 이어지고 있다. 천금 같은 정년연장의 선물. (…) 생각해보니 확실히 ‘누린 세대’였다. 따져보면 더 가진 것도 있고 덜 가진 것도 있지만 ‘국제시장’세대, ‘베이비붐’세대, 그리고 지금 ‘미생’세대에 비하면 분명 많은 것을 누려왔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준 것 이상으로 받았다는 생각이다. 이젠 사회에, 특히 기회조차 봉쇄당한 젊은 친구들을 위해 뭔가를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얄미운 세대(한국일보 ‘메아리’ㆍ이성철 부국장) ☞ 전문 보기
“이른바 ‘386세대’인 대학선배 L씨. 1960년대 초반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습니다. 강의실보단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죠. (…) 그래도 졸업 땐 학과사무실에 수북이 쌓였던 취업추천서를 골라 취직했습니다. 직장 생활도 순탄했습니다. 80년대 후반 찾아온 ‘3저 호황’ 덕이었죠. 30대였던 90년대 말 진보정권의 산파역도 해봤습니다.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았지만 용케 비껴갔습니다. 한데 지난해 복병을 만났습니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자 회사가 칼을 빼든 겁니다. 50대 고참 부장들이 줄줄이 명예퇴직 도마에 올랐습니다. (…) 한국의 ‘386’은 유별난 세대입니다. 우선 인구비중(2010년 총조사)이 17%나 됩니다. (…) 6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20년부턴 한 해 80만 명 넘는 퇴직자가 쏟아집니다. 뒤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인구비중이 16.5%인 70년대생 퇴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30년 가까이 한국 사회는 L선배처럼 퇴직하고도 은퇴하지 못하고 구직시장을 맴돌 ‘반퇴자(半退者)’ 쓰나미에 파묻힐 거란 얘깁니다. (…) 진보정권 탄생의 주역이었던 386세대가 좌절하면 어떻게 될까요? 안 그래도 좌우로 갈린 우리 사회가 ‘장그래’와 ‘마 부장’의 세대 갈등으로 사분오열되지나 않을지요. (…) 2%대 은행 금리론 30년 ‘반퇴 생활’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4~5%대 수익률을 보장해줄 투자상품이 절실합니다. 치킨집과 아파트 경비도 답이 될 수 없죠. 임금피크제나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로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이뤄져야 합니다. (…)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란 기대일랑 빨리 접을수록 신상에 이롭습니다. 나부터 30년 내다보고 인생설계 다시 짜야 합니다.”
-386세대 퇴직 쓰나미와 ‘반퇴시대’(1월 12일자 중앙일보 ‘정경민의 데스크 칼럼’ㆍ경제부장) ☞ 전문 보기
소득-분배 정의가 복지-재분배에 앞선다. 연대는 차선. 누가 시혜보다 수혜를 더 바라겠나.
“이번 여야 협상 과정에서 나온 소득대체율 인상이 국민연금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문제가 많은 국민연금을 그대로 두어서는 더욱더 안된다. 국민연금 개혁은 제대로 된 대안을 찾기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제도 밖에서 찾아보면 꽤 괜찮은 답이 있다. 대안의 하나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에다 이자ㆍ배당소득이나 임대소득 등을 합해 소득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람에게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세금에 ‘노인연대세’라는 이름을 붙여 기초연금의 지급 금액 인상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실행은 어렵겠지만 국민연금의 폐지보다는 덜 충격적이면서, 공적연금의 사각지대 축소와 세대 간 불균형 완화라는 큰 장점이 있다. 조세 저항은 있겠지만 혜택받은 ‘노인들의 의무(Senior Oblige)’라고 잘 설득하면 가능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한국을 젊은이들이 애를 낳고 살아갈 만한 나라로 만들지 못한 책임의 일부로 이에 대한 논의라도 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 밖에 답이 있다(경향신문 ‘경제와 세상’ㆍ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전문 보기
“노동당 원로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주간지에 보낸 기고문에 ‘노동당은 온정과 보살핌뿐만 아니라 꿈과 열망을 위한 당이 되어야 한다’고 썼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보호만 외치다 그 계급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이들이 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월 8일 전당대회에서 “흩어진 48%를 다시 모으겠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겠다.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외쳤다. 그는 지난 대선 득표율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3.6%포인트 뒤졌다. 상대의 표 중에서 1.9%만 가져왔어도 승리할 수 있었다. 50대에서 37%대 63%로 압도당하지만 않았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이 수치만 보면 그가 왜 공무원연금 개혁의 축소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의 인상을 고집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퇴직이 멀지 않은, 연금에 민감한 50대 공략을 위한 얄팍한 전술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산수’로는 2%를 더 얻기는커녕 48%를 지키기도 힘들다. 국민의 꿈과 열망을 위한 큰 싸움을 해야 한다.”
-딱 2% 부족하다고 믿는 그에게(중앙일보 ‘분수대’ㆍ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 전문 보기
민주주의가 조롱된다. 대통령에 의해서다. 유효한 당선엔 힘이 긴요하다. 정당성이 아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죄의 벌’의 균형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뒤돌아보게 한다. 조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저질렀다는 허위사실 공표라는 죄와, 당선무효형이라는 벌의 간극이 너무나 아득히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 이 사안은 애초 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를 내리는 선에서 끝난 문제였다. 처벌의 롤러코스터도 유분수지, ‘훈방’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졌던 죄목에 대해 뒤늦게 ‘사형 선고’라는 극형이 내려진 셈이다. (…) 법을 떠나 사실 관계만을 따져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죄도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 조 교육감의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이 사건 범행으로 고승덕 후보가 낙선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국정원 댓글 사건이 선거에 끼쳤을 파급력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성완종 리스트’를 통해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핵심 책임자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마저 제기된 상태다. ‘선거자금 회계 부정’은 일반 선출직 공무원들은 곧바로 당선무효형을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다. (…)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런 주장이 나오기만 하면 ‘대선 불복’이라는 말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검찰이 조 교육감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기소를 강행한 것이야말로 ‘선거 불복’ 혐의가 짙다. 선거 과정의 중대한 흠결로 정통성을 의심받는 대통령의 휘하에 있는 검찰이,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육감의 당선 무효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역설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감의 당선무효, 대통령의 당선무효(한겨레 기명 칼럼ㆍ김종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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