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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페어플레이는 없다

입력
2015.05.2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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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둔 뒤 승용차를 거의 타지 않는다. 운전하는 일이 번잡하기도 하거니와 승용차를 타고 바쁘게 달려가야 할 일이 사라지기도 한 까닭이다. 공동체를 오가며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웬만하면 마을버스도 타지 않는다. 집과 지하철 역 사이의 낮은 산을 걸어서 넘는다. 더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 산길을 걸으며 누리는 호사는 크다. 요즘처럼 봄꽃 피어나고 신록이 우거진 아침의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 느낌은 더욱 각별하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새롭게 안 사실도 많다. 적어도 서울 시내에서 이동하기에는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이 더 빠르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간혹 자동차를 타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게 있다. 차들이 눈에 띄게 고급스러워진 것이다. 무엇보다 수입 외제차가 크게 늘었다. 몇 년 사이에 벌이가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닐 텐데 고급차가 늘어난 건 무엇 때문일까. 어려운 시기, 힘들여 번 돈을 한낱 이동수단을 위해 지나치게 쏟아 붓는 건 아닌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높은 지위나 권력이 그저 일 하기 위함만이 아닌 것과 같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예를 좇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뿐이라면 어렵기는 하지만 최저임금으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이미 자신과 자식, 손자대까지 먹고 살 것을 충분히 벌어놓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할 이유도 없다.

어쩌면 돈과 권력 그리고 명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한 수단,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공의 목표는 하나로 수렴된다. 사람들이 내게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며 맞장구를 치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이 이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저 이동을 위한 목적만이라면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작고 낡은 차가 더 유리함에도 한사코 고급차를 마련하려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마다 재벌 2세가 등장하고, 텔레비전에서 연예가 뒷담화의 편성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이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어쩌면 때 아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정부와 지자체가 이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인문학으로 뭔가 있어 보이고 싶고 눈길을 받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정부와 지자체가 간파한 것이다.

오래 미적거리던 총리 후보가 또 발표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음에도 총리라는 자리가 중요한 건 그 일의 막중함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돈과 권력의 가치가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총리가 된다는 건 성공의 한 정점에 섰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총리 후보가 발표될 때마다 재확인되는 우리 사회의 성공 방정식이다. 페어플레이는 없다. 이는 총리뿐 아니라 작금 우리 사회 이른바 주류의 성공 패턴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역시 희망을 거두어야 하는가.

그러나 인문학에는 다른 것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근본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의 통념에 맞서는 것이다. 다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가치에 기초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에는 하나의 길 뿐 아니라 이보다 더 나은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몇 가지 분명한 사실도 있다. 평생 권력만 추구한 사람은 이 때문에 벼랑에 몰리고, 물질적인 부만 쫓은 사람은 결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자동차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1980년대 유럽에서 한 유력 은행의 도산으로 도미노처럼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은행이 있었다. 최고 경영자에게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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