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Oxiㆍ반대) 61%!” 지난 5일 실시된 국제 채권단의 긴축안에 대한 그리스 국민투표가 예상을 뒤엎고 반대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절차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지만, 그리스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리스 국민은 앞으로 적어도 수 년, 길어지면 수십 년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혹독한 IMF 경제위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리스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오히’를 외친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적으로는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정권이 반대를 해야 협상에 유리하다고 선동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경제적으로는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유럽 지도부가 5년 전 권고했던 긴축으로 그리스 경제가 25% 축소되었고 청년실업률이 60%를 넘는 초라한 결과를 낳은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이 사태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고대의 기록으로 100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공격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할리우드 영화 ‘300’ 시리즈가 이 전쟁을 다뤘다. 스파르타 용사 300명이 페르시아 대군과 맞싸운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1편에서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우리에겐 후퇴도 없고, 항복도 없다. 이것이 스파르타의 법이다”라고 외쳤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 2편에서는 아테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가 “보여주자. 무릎을 꿇고 사느니, 두발로 서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이라고 고함쳤다. 영화 대사지만 그리스인들의 민족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을 보면,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패전 소식을 들은 페르시아 왕비 아롯사가 “누가 그들의 주인으로 군대를 지휘하오”라고 묻는다. 그러자 신하가 답한다. “없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노예라고도, 누구의 신하라고도 불리지 않사옵니다.” 왕비는 그 말의 뜻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고대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왕의 신하이거나 노예였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를 통틀어 오직 그리스인만이 자유인이었고 그것이 그들의 자긍심이었다.
소포클레스는 “야만족은 노예를 갖고 있고, 그리스인은 자유를 갖고 있다”라는 말로 자신들이 ‘자유인이라는 자긍심’을 표현했다. 이후 이것이 그리스인들의 민족성이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그런데 채권단이 빚을 빌미로 바로 이 자긍심을 짓밟고 있다고 그리스 국민들은 느꼈다. 그래서 반대표를 던졌다. 투표 날 밤, 국기를 들고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 몰려나온 군중들이 “오늘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승리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면서 북치고 춤을 춘 것이 그 증거다.
다음 날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치프라스 총리에게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정체성과 문화를 지킨 방식에 대해 남미인들과 쿠바인들은 존경을 표한다”라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스티글리츠 교수도 “그리스 문제가 더 이상 돈과 경제학이 아니라 권력과 민주주의 문제라는 비밀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어떤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 모델까지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면, 공공기금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민간채무를 탕감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권단이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인들은 2,500년 전 그들의 조상이 그랬듯이 뚜렷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를 외치며 이탈리아군을 막아냈다. 이후 매년 10월 28일을 ‘오히의 날’로 기념한다. 2015년 6월 5일이 그리스 국민들에게 제2의 오히의 날이 되길 바라며 응원을 보낸다.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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