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징용자 유골 115구 송환
한일 민간단체 18년간 노력의 매듭
진실ㆍ화해 공동작업 새로운 계기로
“사람의 손으로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 반세기 전에 이 땅에 흘린 그 희생의 피가 우리를 불러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했습니다. 이 움직일 수 없는 범죄의 증거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빕니다.” 1997년 여름, 홋카이도 슈마리나이(朱鞠內) 지역에서 발굴된 4구의 유해에 대한 위령제에서 한 일본인 참석자가 눈물을 흘렸다.
일제 1940년 전후, 일본의 탄광 댐 철도 비행장 건설현장에는 무수한 조선인이 강제노동(징용)에 동원됐다. 문어방 혹은 벌집으로 불린 숙소에서 영양실조 구타 사고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1976년 슈마리나이 지역 한 스님이 인근 우류댐 공사에 동원된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암매장되어 그 유골이 일부 인근 사찰 등에 보관돼 있음을 확인했다. 스님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희생자 귀향 운동’을 시작했다. 일부 자료를 근거로 조선(한국) 본적지에 ‘죽은 이의 편지’를 보냈고, 이듬해 몇몇 한국의 유족으로부터 고마움을 표하는 ‘산 자의 답신’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여름 스님과 주민들은 한국의 친구들을 만났다. 학창시절 논문을 쓰기 위해 홋카이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던 정병호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bhc0606@gmail.com)가 약속대로 현장을 찾아왔다. 정 교수는 1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스님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한국학생만 아니라 일본학생도 함께 할아버지 세대의 역사와 진실을 발굴했다. 댐 공사 현장에서 유골 4구를 찾았다. 관도 없이 쪼그려 앉은 자세로 몸이 꺾였거나 두개골이 심하게 파열돼 있었다. 함께 위령제를 지냈다. 당시 홋카이도TV는 이 과정을 기록해 할아버지를 파내다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내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정 교수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공동작업’은 이후 18년 동안 연인원 1,500여명이 참가하여 7차례 유골 발굴, 10여 차례 유족 찾기, 여름ㆍ겨울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학생들도 참가하여 민간차원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 워크숍’이 한국 일본 중국 새로운 세대간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광복 70년을 맞아 발굴된 희생자의 ‘귀향 운동’을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홋카이도 사찰에 보관돼 있던 유골(77구)과 아사지노 일본 육군비행장 건설 희생자(34구),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 건설 희생자(4구)의 유골 등 115구를 고향으로 옮기는 일이다. 모두가 조선(한국) 국적과 고향이 확인된 희생자들이다. 추석을 앞둔 내달 12일 아사지노 비행장 건설 희생자 유골이 보관돼 있는 홋카이도 북부 마을에서 ‘70년만의 귀향’이 시작된다. 고향을 떠나 홋카이도까지 끌려갔던 여정을 거꾸로 되짚는다. 바다를 건너고 일본열도를 횡단하여 시모노세키항에서 대한해협을 지나 내달 18일 부산항에 도착한다. 이튿날 서울시청광장에서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서울시립추모공원에 영면토록 할 계획이다. 모든 행사는 주변 단체들의 자원봉사와 민간인들의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측에선 ㈔평화 디딤돌, 일본측에선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다.
8ㆍ15 광복 및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점으로 한ㆍ일 정부간에 미묘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담화를 보면서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 해결과 국제정치 해법, 정부와 민간 차원의 대응을 분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귀향 운동은 양국 정부가 모르는 척하는 가운데 그 동안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 ‘70년만의 귀향, 진실ㆍ화해 공동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1997년 슈마리나이 위령제에서 눈물을 흘리던 일본인 참석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확인한 이 준엄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러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범죄와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새 역사가 시작되도록 해야 합니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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