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케이 팝을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 유독 자주 만날 수 있는 표현들이 몇 개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토털 패키지’라는 수식이다. 여기에 존 리(John Lie) 같은 미국의 한국학자는 ‘쾌적한’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다. 즉, 쾌적한 토털 패키지가 케이 팝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얘기다.
‘쾌적한 토털 패키지’라, 한국어로 풀어보면 실상 별 거 없다. ‘쾌적한 종합음악선물세트’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쾌적한’이 붙었으니까, 이 종합선물세트의 요소들을 듣는 이들이 별다른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게 핵심일 것이다. 글로벌 문화를 꿈꾸는 케이 팝에게 이는 더 이상 바랄 수가 없을 찬사다. 기실 ‘가요’가 ‘케이 팝’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에는 분명히 수출지향적인 어떤 욕망이 숨어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해석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잘 만들어진 음악’에 한해야겠지만. 참고로 케이 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H.O.T.가 일본 시장에서 소구력을 얻으면서부터였다고 하는 게 정설이다.
어쨌든, 쾌적한 토털 패키지라는 뜻에 집중해서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최근의 앨범을 하나 꼽아보려고 한다. 바로 레드 벨벳의 [The Red]다. 이 음반에서 주목받았던 곡은 역시 첫 싱글로 발표된 ‘Dumb Dumb’이었다. 곡을 들어보면, “이것이 현재의 케이 팝이구나.”하는 요소들이 대거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존 리가 나열했듯, “캐치한 멜로디, 좋은 가창력, 매력적인 신체, 쿨한 의상, 최면적인 움직임과 여타 매력적인 속성들이 위협적이지 않고 기분 좋은 패키지 들어있는 것이다.(“catchy tunes, good singing, attractive bodies, cool clothes, mesmerizing movements, and other attractive attributes in a non-threatening, pleasant package.”) 다만 한 가지. 곡 후반부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랩은 좀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지만, 이 부분만 제외한다면 가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는 곡이다.
이 곡 외에 ‘Huff n Puff’를 감상해보면, 케이 팝의 또 다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케이 팝은 더 이상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무국적성을 도리어 장점으로 내세운 덕에 케이 팝은 글로벌 (지향의) 문화로서 점차 세를 불릴 수가 있었다. 이건 비단 레드 벨벳뿐만이 아니라 인기 있는 한국 아이돌의 음악 전체를 흐르는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SM 소속 아이돌들에게 이런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레드 벨벳은 데뷔 이후부터 선배격인 에프엑스(f(x))와 꾸준히 비교되어왔다. 레드 벨벳은 마치 에프엑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 장르를 포괄하면서도 이것을 개연성 없는 노랫말을 통해 표현하는데, 이게 절대 정신 없게 들리지 않고 뭔가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좀 더 미래적이고, 한층 불규칙하게 운동하는 에프엑스와의 차별점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간단하게 에프엑스의 ‘Electric Shock’가 파편화되어있는 가사와 사운드를 매력으로 내세운다면, ‘Dumb Dumb’는 그보다는 이야기의 구조가 선명하다는 뜻이다. ‘똑같은 듯 다른’ 인형 컨셉트를 내세운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이 외에 트랩 비트를 차용한 ‘Red Dress’, 심플한 도입부와 감성적인 후렴구의 대비가 돋보이는 ‘Time Slip’, 상쾌한 모던 록풍의 노래 ‘Day 1’, 80년대 뉴웨이브의 향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등, 레드 벨벳의 [Red]는 즐길만한 요소로 가득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앨범이다. 여기에 ‘Made in Korea’라는 라벨은 찍혀있지 않다. 그런데 이게 도리어 장점으로 전환되는 어떤 특별한 순간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앞서도 강조했듯 그 순간의 이름은 바로 ‘잘 만들어진 음악’이다. 절대적인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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