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한 야권은 국민갈등 치유 못해
文-非文 그룹, 합종연횡 지혜 찾아
견제와 균형 속에 하나로 묶어 내야
올 추석민심은 뭘까? 호(好)와 불호(不好), 기대와 비판이 모여야 민심이라 할 텐데, 솔깃한 모임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추석민심은 세월호 참사로 생겨난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불호였다. 앞서 2013년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호감과 기대였다. 국민 모두가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워했고, 대부분의 화제가 박 대통령에게 모여있었다. 이번엔 모두 딴청들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짐작하며 대화가 끊기었다. 야권에 대한 관심이 그나마 그렇게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야권의 행로’에 관심을 보였다. ‘문재인과 그 외’가 대화의 중심이었다. 많은 얘기는 안철수였고, ‘천정배의 신당’이나 ‘박준영의 민주당’에 ‘박주선의 다른 신당’도 얘깃거리로 올랐다. 여의도 밖으로 확대하면 박원순 손학규 안희정 김부겸도 있었다. 문재인과 ‘그 외 인사들’의 관계설정에 대한 추측과 해석이 분분했다. 하나의 야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그 과정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현재 상황에서 두 가지 과정을 상정할 수 있겠다. 하나는 ‘비문(非문재인) 그룹’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일이다. 그러면 현재 야권의 정치구조로 보아 엇비슷한 세력판도가 형성될 듯하다. 건강한 야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문재인 그룹과 비문 그룹의 균형과 견제가 필요해 보인다. 두 번째 과정은 문재인 측에서 비문 그룹들을 각개격파하여 일찌감치 하나의 야권으로 융합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1중대’나 ‘문재인 2중대’ 등을 만들어 야권 분열을 원천봉쇄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과정 모두가 현재의 거대 여권에 대응하는 튼튼한 야권이 존재할 수 있는 방안이 될 만하다. 이른바 합종(合從)과 연횡(連橫)이다.
중국이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기 전 B.C.3~4세기, 전국시대 최대의 이슈는 합종과 연횡이었다. 상대적 강국이었던 서쪽의 진(秦)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동쪽 6개 국가가 합심하여 종(세로ㆍ남북)으로 동맹을 맺었다(합종). 팽팽한 군사력은 모두에게 공존의 평화를 가져왔다. 이후 진나라는 각개격파에 들어갔다. 6개 국을 분리하여 하나씩 자국과 연결하면서 횡(가로ㆍ동서)으로 불가침 밀약을 맺었다(연횡). 한동안 평화가 지속되었으나 B.C.3세기 초 진나라는 다른 국가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통합된 나라를 완성했다. 일견 모순된 얘기처럼 들리지만 강한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기에는 합종책이 효과적이고, 강자 입장에서 연합세력을 굴복시키려면 내밀한 연횡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로 전해지고 있다.
건강하고 튼튼한 야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하다. 많은 이들이 합종연횡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든 단결된 야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 때문이다. 현재의 파워구도는 안철수 등 여의도 인사에서 박원순 등 범야권 모두가 합종해야 문재인의 세력과 맞설 수 있다. 문재인 측이 많은 것을 내려놓고 각 세력을 통합해 나가야 거대 여권과 맞설 수 있다는 점도 여전히 현실이다.
내년 총선이든 이후 대선이든 튼튼하게 통합된 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과 불만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총선에서 혹은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느냐 여권이 이기느냐는 민심의 결과일 뿐 국가와 국민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한다. 여야 정치세력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있어야 민심이 드러날 수 있고, 민심이 드러나야 갈등에 대한 정치적 치유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합종책이든 연횡책이든 서로 충돌하는 수단인 듯하지만 원래 한 사람의 동일한 가르침에서 나왔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 합종연횡 끝에 중국을 하나로 묶었던 진나라는 불과 30여 년 후 망하고 중국은 다시 분열된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만을 이용해 연횡정책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다. 굴복한 듯한 6개의 주변국가들이 하나같이 다시 들고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올 추석민심을 살핀다면 제대로 된 야권이 있어야 하고, 합종연횡의 지혜를 모아 분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바램이다.
정병진 논설고문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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