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스물아홉 살 여자입니다. 남자친구와는 2년 반을 만났습니다. 정말 제 생에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어요. 예전에 다른 연애를 할 때는 고작 길어야 6개월 정도였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오히려 믿음이 굳건해지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헤어지기 세 달 전쯤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그는 갑자기 회사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고, 그 와중에 저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서로에게 점점 더 사이가 멀어졌죠. 그래도 3년 가까이 만나서 제 모든 것을 보여줬는데, 이런 식으로 인생에 좀 힘든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슬퍼요. 사랑이 끝난 후의 이 허전함과 허무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A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끝나버려서 많이 허무하시죠. 당연히 지켜질 것으로 믿었던 둘만의 우주가 소멸해버리는 그 느낌을 당사자가 아니고서 누가 제대로 알 수 있겠어요. 아마 지금은 살아도 사는 느낌이 아닐 거예요.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쯤은 다 경험하는 착각 하나를 꼽으라면 '나의 사랑만은 영원히 이대로 계속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흔히 보기 어려운데, '내 사랑만은 특별할 거야'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정말 자주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사랑의 신비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해요.
하지만 따뜻한 위로만큼이나 냉정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네요. 본래 그렇게 순식간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사랑이 시작되는 데에는 두 사람의 같은 마음이 필요하지만, 헤어지기 위해서는 그저 한 사람의 변심으로 충분한 것이 연애의 생리라는 것을요.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이토록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겠지만, 다시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이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연애의 비정함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창 힘들 때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도 당신에게 많은 상처가 된 것 같네요.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별이 꼭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참 좋은 시기를 함께 보냈지만, 계속 함께 가기에는 인연이 다한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요. 각자 뚜벅뚜벅 걸어오던 길 위에서 만났고 그 길이 교차하는 구간 동안 함께 걸었지만, 서로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젠 놓아주는 수밖에 없는 거죠. 힘든 일을 경험했을 때 더 신뢰와 친밀감이 강해지는 사이라면야 좋았겠지만, 힘들어지니 바로 손을 놓게 되는 관계라면야 정말로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요.
너무도 좋아했던 사람이었지만 제가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을 때 제가 했던 말이 있어요. '너와 나는 갈 길이 다른 것 같다. 놓아줄 테니 잘 가라'라고요. 갈 길이 다른 사람을 붙잡지 않고 잘 놓아준 것만으로 당신은 중요한 인생의 진실을 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자 그럼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해야 좋을까요? 헤어진 당신이 지금부터 해야 할 가장 첫 번째의 일, 그건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슬픔이 밀려오면 그 슬픔을 기꺼이 맞닥뜨리세요. 밥 먹다 울음이 나오면 그냥 울어 버리는 겁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손으로 잔뜩 연습장에 적으며 화난 감정도 다 표현해보세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생각나 서러울 땐 이해심이 깊은 친구를 붙잡고 이야기도 해보시고요.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남아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당신이 다 표현하고 토해낼 때쯤 지친 마음도 한결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슬픔을 애써 참으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해요. 혼자서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맞닥뜨리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이별의 상처로부터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는 동안, 지금까지 남자친구와 만나느라 더 깊이 만나지 못했던 많은 것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시와 소설들, 혼자만의 산책길, 좀 더 용기를 내서 혼자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겠죠. 둘이 함께였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요. 혼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이 없을 때도 씩씩하게 잘 지낸다는 것을 넘어 본래의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나와의 화해이고 만남의 과정이어야 할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순식간에 끝나버린 연애에 대한 허무함이 당신을 힘들게 하겠지만,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나와의 만남'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도 기억했으면 해요.
*추신: 이제 이 지면을 통해 편지글을 전하는 일은 스물다섯 번째의 이 글이 마지막입니다. 후회 없이 사랑하고 아껴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 역시, 후회 없이 사랑하고 아껴주세요.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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