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건 우리 애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요.”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학부모 상담 기간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다. 공부는 뛰어나게 잘했지만 친구들과 전혀 교류하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얘기를 꺼냈다가 그 부모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사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아이의 어려운 상황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부모는 철옹성처럼 듣기를 거부했다. “우리 애가 어떤 애인 줄 아느냐.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상위 1%에 든 아이다. 본인이 놀고 싶지 않을 때 놀지 않은 것뿐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아이를 이상한 애로 몰아붙이냐”는 항변이었다. A 교사는 말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교사는 20명이 넘는 학생들의 관계 속에서 아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해요. 집에서 자기 아이만 보는 부모보다 교사가 아이를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셔야 해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부모에게도 떨리는 사건이다. 학부형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고, 교사와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약도 먹여주고, 용변 뒤처리도 해주던 어린이집, 유치원의 교사와는 다르다. 선생님을 무턱대고 어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엄마의 한 순간 ‘진상짓’으로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초등교사 10명에게 ‘진상 학부형’의 유형을 물었다. 10명 전원이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며 아집을 부리거나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자기 아이의 입장만 생각하는 부모”라고 답했다. B 교사는 “학교는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다”며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C 교사도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모든 상황을 판단해 매번 전화를 주시는 엄마들이 교사에게는 가장 힘든 학부형”이라며 “담임교사를 신뢰하되 궁금하거나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예의를 갖춰 문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교사와의 관계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교사와 나는 1대 1의 관계가 아니라 1대 20의 관계, 즉 나는 20명의 학부형 중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나의 소중한 아이도 20명의 아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밤 늦게 전화를 걸거나 수시로 카톡을 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대체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교사에겐 20개의 문자나 카톡이 폭주할 수도 있기에 더더욱 금물이다. D 교사는 “교사도 사람인지라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할 대 필요한 예를 갖추면 된다”며 “상담에 갈 때 약속시간 잘 지키기,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하지 않기 등에 신경 쓰라”고 조언했다. 참다 못한 교사가 “가급적 문자는 수업 후 퇴근 전 시간대에만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퇴근 이후에는 저도 가정에서의 일과가 있어 응답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단체문자를 보내고 나면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쉽지 않다.
교사의 결정에 반대한다며 막말을 하거나 주변 엄마들 말에 일희일비하는 학부모도 교사를 힘들게 했다. 남의 아이에게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떤 학부모를 가장 좋아할까.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부모”라고 답했다. “선생님을 신뢰하고 묵묵히 협조하는 학부모가 제일 좋고 감사하죠.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며 학교로 쪼르르 달려오기보다는 선생님을 믿고 기다려주시면 좋겠어요. 내 아이부터 바른 인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봉사, 배려, 경청 같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부모가 먼저 몸소 실천하세요.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도 사랑을 듬뿍 받을 겁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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