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어머님, 연산보다 우유팩 따기를 가르치세요”

입력
2016.01.27 04:40
0 0

‘엄상냥 선생님’이 들려주는 초등 입학 가이드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학부형이 된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 교사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아이가 가장 예쁘다"고 입을 모은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학부형이 된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 교사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아이가 가장 예쁘다"고 입을 모은다. ©게티이미지뱅크

1월은 초등학교 취학아동 예비소집이 있는 달. 이제 여덟 살이 된 소띠 아이들은 학령기 아동으로 신분이 상승해 정규교육 과정의 기나긴 트랙 위에 올라선다. 물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천둥벌거숭이의 손목을 움켜잡고 엄마만 긴장될 뿐이다. 40분씩 가만히 앉아서 수업이라는 걸 듣기는 할 수 있을지, 받아쓰기 시험은 반타작이나 하려는지, 친구한테 얻어맞고 울며 돌아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초등 1학년 담임을 맡아본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 교사 10인을 수소문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나이는 30대부터 50대까지로 다양하며, 재직 학교도 서울과 지방, 서울의 강남과 강북으로 다변화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 달간 무엇을 집중적으로 준비해야 할까. 10인의 선생님이 들려주는 대체로 비슷한 견해들을 종합해 가상 인물 ‘엄상냥 선생님’을 만들었다. 엄상냥 교사와의 상담 형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Q. 선생님, 입학 전 반드시 연습하고 가야 하는 걸로 뭐가 있을까요? 받아쓰기 시험은 입학 다음날부터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A. 엄상냥=많은 예비 초등생 부모님들이 받아쓰기나 연산 같은 공부 걱정들을 하세요.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공부가 중요한 시기가 아닙니다. 애기에서 학생이 되는 1학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활태도예요. 태도가 1학년 생활의 알파요 오메가죠. 그래서 중요한 건 철자법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아니라 급식으로 나눠주는 우유팩 입구를 혼자서 딸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한 반에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고,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교사는 그걸 일일이 따줄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못 따는 아이가 여러 명 나옵니다. 그럴 때 자기 걸 따고 옆에 있는 친구 것까지 따주는 아이가 있으면 정말 고맙고 예쁘죠.

이런 원리로 생각해보면 무엇을 준비시켜야 할지 답이 나올 거예요. 젓가락 사용법, 식판 들고 급식실 다니기, 외투 혼자 입고 벗기, 신발 혼자 신고 벗고 정리하기, 책가방 싸는 법, 화장실 사용 후 물 내리기 같은 겁니다. 소소하지만 교사가 일일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스스로 해내는 연습이 가장 중요한 때예요.

Q. 학교에서 대변이 마려우면 어떻게 하나요? 뒷처리는 안 해주시겠죠?(^^)

A. 엄상냥=종종 그런 질문을 하시는 어머님들이 계신데, 분위기가 매우 어색해진답니다. 당연히 안 해줍니다. 아이가 배변 습관이 규칙적이지 않다면 이제부터라도 훈련을 하시는 게 좋아요.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교사가 매번 데려갈 수도 없고, 혼자 공부시간에 가는 건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초등학교 화장실 변기 중 절반은 양변기고 절반은 재래식 변기인 곳이 많아서 재래식 변기 사용법도 익히는 게 좋아요. 급할 때 양변기만 고집할 수는 없으니까요. 미리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화장실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면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가정에서 비데만 사용해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종이 사용법도 미리 익혀두는 게 좋습니다. 배변은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 심리상태가 편안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세요. 유산균 등을 먹이는 것도 괜찮습니다.

Q. 아이가 아직 한글을 완벽하게 떼지 못했어요.

A. 엄상냥=한글은 어른들도 완벽하게 못 뗀 사람이 많습니다. 교사에 따라 초등 고학년이 받아쓰기 시험을 보기도 하고요. 1학년 입학할 때는 받침 없는 글자를 쓰거나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글 읽기에 집중하면 입학 후 무난하게 따라올 수 있어요. 제대로 쓰려면 먼저 정확하게 읽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받아쓰기는 학교마다 교사마다 시작하는 시기가 달라요. 심각하게 한글 미해득자가 아니라면 1년 후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됩니다.

한글 학습보다 중요한 건 수업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누가 말하는 중간에 끊지 않고, 말장난으로 방해하지 않는 거요. 단체생활에서 집중하지 않는 행동은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시면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Q. 수포자가 되지 않으려면 연산도 미리미리 많이 준비해야 한다던데.

A. 엄상냥=입학할 때 1에서 10까지 더하고 뺄 줄 알면 충분합니다. 어머님들을 보면 한 자리 수 연산을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하길 원하시던데, 학교에서는 개념 습득이 우선이에요. 일상생활에서 구체물을 가지고 수감각과 수개념을 정확하게 몸으로 익혀야 해요. 손가락을 사용해서 2와 8, 3과 7 식으로 10의 보수관계를 충분히 익히면 좋습니다. 수학은 선행학습이 많이 돼 있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조바심을 느끼실 거예요. 하지만 이런 아이들 중 학습에 흥미를 잃고, 빠른 문제해결 후 자세가 흐트러지는 아이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연산 속도가 너무 느려도 후속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감이 떨어져서 좋지 않아요. 선행학습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완벽주의 성향의 아이들, 잘하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는 아이들은 선행을 하는 것도 좋아요. 다만 1년이 넘어서는 선행은 안 돼요. 선행은 1학기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Q. 책가방 외에 어떤 준비물을 준비해야 하나요?

A. 엄상냥=요즘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공책과 연필, 색연필 등 학습준비물을 제공합니다. 교사에 따라 요구하는 공책의 줄수나 자의 길이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학부모 오리엔테이션 이후 교사의 안내에 따라 준비하면 됩니다.

학교생활은 공동체생활이라는 점만 숙지하면 아이도, 부모도 잘 적응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에서 교실을 구경하고 있는 예비 초등생과 학부모.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학교생활은 공동체생활이라는 점만 숙지하면 아이도, 부모도 잘 적응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에서 교실을 구경하고 있는 예비 초등생과 학부모.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Q. 아이가 너무 순하고 여려서 친구들한테 양보만 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도록 가르쳐야 할까요? 매번 선생님한테 이르는 것도 해답이 아닐 텐데요.

A. 엄상냥=갈등이 없다는 것은 아이가 갈등을 회피하는 걸 수도 있어요. 건강한 태도라고 할 수 없죠.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싫은 것은 싫다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하지만 위협적이거나 짜증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울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상황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셔야 해요. 친구들도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말하는 아이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하지만,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선생님께 이르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더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이가 양보만 하면 엄마 입장에선 답답할 수 있지만, 그건 아이의 큰 장점이에요. 이런 아이는 교실에서 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다들 같이 놀려고 해요. 하지만 무조건적인 양보, 대가를 바라는 양보, 내키지 않는 양보는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서 싫은데도 양보하는 건 오히려 아이를 소극적으로 만들어요.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무조건 양보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내키지 않을 때는 거절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어린 1학년이기 때문에 언어지능이 발달한 아이가 기득권을 잡기 쉽고,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는 학생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요. 이런 경우 부모님들의 감정싸움으로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한 아이와 갈등 상황이 반복되거나 갈등의 패턴이 동일하게 반복된다면 그때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일이라면 약간은 손해 보는 상황일지라도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의존적 성향을 갖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단순한 문제라면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 주시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스스로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세요. 아이는 때때로 치이는 과정 속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위기를 극복해가며 점점 더 단단해지는 자아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Q. 아이가 자꾸 학교가 뭐냐고 묻습니다.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니 공부는 왜 하냐고 묻네요. 이 순환논법을 끊을 명쾌한 답변으로 뭐가 좋을까요?

A. 엄상냥=학교는 무서운 곳이 아니라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셔야 해요. 흔히 하는 ‘너 학교에서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나’ 같은 말은 하지 마세요. 학교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즐거운 곳이니까요. 선생님, 또래친구들과 함께 모여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곳, 그게 바로 학교입니다. 갑자기 숙제가 생기고 시험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때는 아이의 꿈을 환기시켜 주세요. ‘공부란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란다. 너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지. 미래를 위해 생각과 능력을 저축하고, 세상을 보는 바른 안목을 갖기 위해 지혜를 키우다 보면, 네 안에 잠자고 있는 재능도 깨어날 거야’ 이렇게 말해주시면 어떨까요? ‘참고 견디며 공부를 잘하게 되면 좋은 대학에 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단다’ 식의 대답보다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교실에서 볼 때 가장 예쁜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A. 엄상냥=긍정적인 아이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잘하지 않아도 매사 열심인 아이, 집중하는 아이가 제일 예뻐요. 밝고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도 예쁘고요.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아이는 정말 감동이죠. 결국 학습보다는 인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물건을 줄 때 두 손으로 공손히 주는 아이,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받는 아이를 보면 가정교육을 참 잘 받았구나 느낄 수 있거든요. 이런 아이는 친구들도 모두 좋아해요. 화목한 가정에서 바르게 성장한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학습의욕도 넘치고 모든 친구들에게 인정 받는답니다.

학부모께도 꼭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어요. 가정으로 배부되는 각종 조사지의 제출기한을 꼭 지켜주세요. 가급적 배부된 다음날 바로 제출해 주시는 게 좋아요. 마지막날까지 붙잡고 있기보다 첫날 최대한 회수해 마무리 짓는 게 교사도 좋고, 학부모도 바로바로 제출하는 게 잊어버리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다은 인턴기자(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