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없이 미래 없다] 자동차는 초고속 진화, 규제는 거북이 운행
낡은차→전기차 개조 기대했는데
국토부, 규제 변경하며 황당 조건
구글 자율주행차 320만㎞ 갈 때
한국차 올 2월에 임시 운행 허가
국토교통부는 2014년 6월 ‘자동차 구조ㆍ장치 변경에 관한 규정’을 개정, 일반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시 자동차 개조 업체들은 당국의 조치에 크게 고무됐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엔진이 노후한 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토부는 규정을 바꾸며 ‘제작된 지 5년 미만의 차만 가능하다’는 족쇄를 달았다. 출시된 지 5년 도 안 된 새 차를 자기 돈을 들여 전기차로 바꿀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전기차 개조 업체들은 속속 문을 닫아야만 했다. 김대환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조직위원장은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AD모터스와 CT&T 등 유망 기업들이 무너진 것은 결국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하며 진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도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알아서 달리는 자율주행차는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꿀 미래 성장 산업이다. 각국은 이미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2012년 5월 자율주행차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2013년 9월 닛산차가 자율주행 면허를 취득했다. 구글이 2009년부터 개발한 자율주행차는 벌써 320만㎞ 이상 주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에야 시험ㆍ연구 목적 자율주행차의 도로 운행을 위한 규정 마련에 착수했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자율주행차가 처음으로 임시운행 허가를 받은 것이 지난 3월초다.
과거 내연기관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자동차 관련 규제들도 미래 성장 산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지난해 국내에 들여오려 한 2인승 전기차 ‘트위지’도 그런 예다. 유럽에선 이미 1만5,000대 이상 팔렸지만 우리 자동차관리법은 차를 승용ㆍ승합ㆍ화물ㆍ특수ㆍ이륜차 등 5종으로만 분류, 초소형 전기차는 어디에도 들어갈 틈이 없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소형 전기차도 같은 이유로 도로에 나갈 수 없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BYD가 한번 충전으로 400㎞ 안팎을 달리는 ‘e6’를 국내 출시하려다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탈락되자 포기한 사연도 한국 자동차 관련 규제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 지침은 10시간 이내에 충전할 수 있어야 보조금을 주지만 e6는 이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차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일렉트릭’(28㎾h)보다 2배 이상 용량이 큰 배터리(60㎾)를 탑재, 주행 거리도 2배 이상 되는 전기차다. 충전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자동차 시장의 환경 변화에 따른 규제 혁파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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