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가 4일(현지시간)부터 터키에서 온 ‘불법 난민’을 본격적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임시거주 시설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난민들이 대거 ‘탈출’을 감행하고 나서면서 난민시설이 있는 그리스 곳곳이 대혼란에 빠졌다. 더불어 그리스로 넘어간 난민들을 다시 수용하게 된 터키 국민은 송환 거부를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에 돌입했다.
지난달 20일 발효된 유럽연합(EU)과 터키 정부의 협상 결과에 따라 EU의 망명심사 후 자격을 상실한 난민신청자들이 터키로 돌려보내 지게 되면서 그리스는 물론 터키 등 발칸 곳곳이 난민 이슈로 뒤숭숭해지고 있다. 인력과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그리스가 난민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가, 정부간 협상으로 난민을 떠안게 된 터키 국민의 반감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3일 그리스 국영 ANA통신에 따르면 4일부터 6일까지 1차로 자격심사에서 떨어진 난민신청자 750명이 터키로 송환될 예정이다. 그러자 이 명단에 포함돼 서유럽행이 좌절될 것으로 넘겨짚은 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2일 도서지역 주요 난민 집결지 중 하나인 키오스섬에서는 이곳에 머무는 난민 중 절반에 이르는 800여 명이 그리스 본토로 도망치기 위해 시설을 빠져나와 항구로 무작정 도망치기도 했다. 경찰이 마취총과 최루탄으로 진압에 나서자 난민들은 부상을 입은 채 쓰러졌고 키오스섬 항구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키오스섬에서 자원봉사 중인 아이슬란드인 벤자민 줄리안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난민들은 ‘자유’와 ‘터키는 싫다(No Torkia)’를 연호하며 행진을 이어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혼란의 주원인으로는 그리스 당국의 관리능력 부족이 꼽힌다. 워싱턴포스트는 “예산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그리스 정부가 난민 자격을 제대로 판별하기보다 유입 난민을 하루빨리 터키로 되돌려 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터키로 쫓겨날까 봐 불안해진 난민들이 집단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피터 서덜랜드 유엔 국제이주 및 개발 담당 특사는 2일 “그리스가 난민 심사를 졸속으로 할 가능성이 크고, 난민들이 터키로 돌아갔을 때 이들이 시리아 등 고국으로 쫓겨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지원도 부족하다. 현재 EU 국경보안기구 프론텍스(Frontex)는 당초 지원하기로 약속한 EU직원 2,300명 중 고작 200명만을 그리스로 보냈다. 난민들을 통제하기 어렵다 보니 소요사태도 늘고 있다. 지난달 30일 피레우스 난민 캠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인과 시리아 청년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8명이 구속됐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 터키 양국 국민은 난민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접경지대인 이도메니 주민들은 2일 국경에 모인 난민들이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난민촌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터키로 돌아오는 난민들이 임시로 머물게 될 이즈미르주 디킬리에서도 2일 주민들이 난민 송환 반대 시위를 벌였다. 무스타파 토순 디킬리시장은 “디킬리뿐 아니라 이 지역 전체에 난민을 수용할 만큼 보건ㆍ교육시설이 충분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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