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공격적 경영 꺼려
주력사업 대체할 먹거리 못찾아
스타트업에서 아이디어 수혈을
혁신 사고 막는 규제 개혁 절실
펀드 조성해 스타트업 활성화한
이스라엘처럼 국가적 지원 필요
정부가 ‘창조경제’의 기치를 내건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 경제의 역동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일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2016 한국포럼’의 두 번째 토론 세션 ‘한국 기업, 혁신만이 살길이다’에서 전문가들은 혁신적 사고를 가로 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지난 3년 동안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 아래에서 신생 벤처 기업(스타트업)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외국과 비교하면 스타트업의 혁신 시도가 각종 규제에 얽매이는 등 아직도 어려운 환경이다. 대기업들도 공격적 경영을 꺼린다.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기업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10~20명이 모인 스타트업과 수만 명의 사활이 걸린 대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주요 대기업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다. 당장 몇 년 동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10년 후 현재 주력 사업을 대체할 방향은 뚜렷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걸어보지 못한 길을 처음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런 변곡점이 생겼을 때 주저 앉지 않고 뛰어 넘어야 새 지평을 열 수 있다.
임 센터장=우리 기업들이 변곡점을 넘어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김 대표=기업들이 가야 할 큰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조업의 스마트화다. 생산하는 제품 자체가 업종 불문하고 자동화, 즉 스마트화 돼야 한다. 작은 전등 하나, 신발 한 짝도 스마트폰과 연결돼 제어할 수 있도록 돼야 한다. 또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도 스마트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원가 구조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임 센터장=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 같다.
김 대표=삼성전자도 최근 ‘스타트업 삼성’ 슬로건을 발표하지 않았나.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외부 업체를 납품하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스타트업에서 아이디어를 수혈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임 센터장=신경철 대표는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로봇 산업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990년대부터 로봇 회사를 세웠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코스닥까지 상장했는데, 유진로봇이 성장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산업용 로봇 개발로 시작했다가 2000년에 서비스 로봇으로 주력 부문을 바꿨다. 로봇이 가장 필요한 아동과 노인 계층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개발 끝에 2007년 유아 교육용 로봇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는데 초기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커서 사업이 위축됐다. 현재 노인 지원 로봇은 국내에서는 제약이 많아 해외 시장 위주로 개발 중이다.
임 센터장=한국도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는 만큼 노인 돌보미 로봇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국내에서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 대표=뉴질랜드는 2025년 전체 인구의 25%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노령층이 되고, 이들을 돌보는 인구가 2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인구의 45%가 노인 혹은 노인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다. 이에 따라 국가적으로 노인 돌보미 로봇 개발에 욕심을 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격진료가 여전히 불법이다. 노인 돌보미 로봇은 원격진료가 핵심인데 그게 불가능하니 사용 가치가 떨어지고, 그래서 시장성이 없어 발전이 더디다.
임 센터장=한국에서 개발해 성공시킨 다음 해외로 갖고 나가는 것이 정석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스타트업의 나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자원도 없고, 인구도 750만명에 불과한데 세계에서 창업이 가장 활발한 국가가 된 비결이 무엇인가.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이스라엘은 정부 주도의 창업 지원기금 ‘요즈마 펀드’를 비롯,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씨를 많이 뿌린 나라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본격적으로 열매를 거두고 있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으로 스타트업 딱지를 떼는 업체가 5년 전에 비해 4배나 늘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리해서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전 세계 평균 지능지수(IQ)를 보면 이스라엘보다 우리나라가 더 높다. 총알이 더 굵은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총알이 굵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발사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젊은이들에게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반면 지금 우리나라는 유진로봇의 사례처럼 혁신적 시도를 막는 규제가 많다. 창업 자금 지원도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스타트업에 쏠려 있다. 청년들이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려면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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