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 린드버그 산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 때 ‘스웨덴 역설(패러독스)’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본인 경제학자 사토 요시히로와 유모토 겐지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였다. 책에는 연구개발(R&D)에 돈을 쏟아 붓는 것만큼 실제적인 성과가 없어 경제 성장이 뒤처지고 있다는, 북유럽의 강국 스웨덴으로서는 자존심 상할 일종의 비아냥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성장률이나 수출 등 각종 경제 지표를 보면 요즘 스웨덴 경제는 꽤 괜찮은 편이다. 최근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올해 국가경쟁력에서는 작년 9위에서 5위로 4계단이나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만난 스웨덴 산업연구소(RATIO) 헨드릭 린드버그 수석연구위원(스톡홀름대 교수)는 “스웨덴 경제가 지금처럼 안정감을 찾은 데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1970~80년대 철강 산업 등이 위기를 맞았을 때 스웨덴 정부는 이들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재정을 대거 투입했다가 엄청난 재정위기를 겪어야 했다”며 “균형감을 갖고 정말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나라 돈을 쓰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교훈을 그 때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철강업체들을 살려내기는 했지만, 일시적 효과였을 뿐 결국엔 경쟁력 자체를 잃은 기업들이 다시 문을 닫게 되면서 혈세만 축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기와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구조조정 상황에서의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지 못했을 때는 국가 전체의 살림살이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는 게 당시 스웨덴이 뼈저리게 깨달은 교훈이었다.
린드버그 교수는 “이는 현재 스웨덴 정부가 가진 강력한 재정준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1996년부터 정부 지출에 한계를 두면서 동시에 재정수지 ‘흑자 목표제’를 도입, 함부로 나라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2007년에는 재정정책심의회를 설치해, 목표 성장률과 고용 등이 일관성 있게 달성될 수 있는지를 감시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는 “이는 유럽 재정위기가 닥쳤던 2010년대 초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큰 타격을 받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했다. 이는 언제든 또다시 닥칠 수 있는 산업재편의 회오리에 대비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이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스톡홀름=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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