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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기업도 못 믿어! 정보 재산 분산을 위한 멍석 깔다

입력
2016.06.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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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다.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모든 내용을 무한한 블록 단위로 쌓아 올린다. 이 정보들은 '서버'에 해당하는 중심체 없이 P2P(Peer to Peer)로 오가게 된다. 변조가 불가능하고 블록체인의 '신용'이 된다. 그동안 정부나 은행이 맡았던 '중간자' 역할을 블록체인 기술이 대신할 미래가 머지 않았다.
블록체인 기술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다.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모든 내용을 무한한 블록 단위로 쌓아 올린다. 이 정보들은 '서버'에 해당하는 중심체 없이 P2P(Peer to Peer)로 오가게 된다. 변조가 불가능하고 블록체인의 '신용'이 된다. 그동안 정부나 은행이 맡았던 '중간자' 역할을 블록체인 기술이 대신할 미래가 머지 않았다.

세상은 장부(帳簿)를 독점한 권력에 지배당한다. 새로운 사회 구조를 창출할 방법 역시 장부를 다루는 방법으로부터 발명될 수 있다. 이것은 직업과 전공에 구애 받지 않고 함께 공부해볼 만한 주제다. 이 문제로부터 우리 시대의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부 권력의 대표적인 예가 중앙집권적 금융 시스템이다. 법정화폐의 발행권은 국가와 중앙은행에 독점되어 있고, 각종 금융 거래는 기업의 중앙 서버에서 관리된다. 금융 시스템과 서버 클라이언트 인터넷의 위상 구조는 한 몸으로 합쳐져 있어서, 하루 7,000만 건 이상, 37조 원 이상의 거래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중앙 서버가 공격받으면 금융 시스템까지 한꺼번에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금융계에서도 집중관리형에서 분산형 시스템으로의 이행을 중차대한 이슈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에 장부의 데이터를 분산해 관리하는 P2P(Peer to Peer) 네트워크 방식이 분산형 시스템의 전형이다. 이 방법을 데이터가 모이는 사회 전반에 응용할 수만 있다면, 장차 혁명적인 파급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분산형 네트워크에서 ‘사람’은 중요한 매개 변수이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 요소다. 부정한 목적으로 데이터(장부)를 조작하는 이가 누구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부의 가치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에 비례하는데, 불특정 개인보다는 국가와 기업의 신뢰도가 더 높이 평가 받는다. 그래서 국가와 기업이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단위보다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장부를 독점할 명분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독점 권력의 전횡을 우려하면서도 중앙집권적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까닭 역시, 내 정보 재산을 신뢰할 수 있는 매개자에 의탁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지난 1월에 열린 제2회 블록체인포럼. 정보통신과 금융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블록체인OS 제공
지난 1월에 열린 제2회 블록체인포럼. 정보통신과 금융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블록체인OS 제공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해결한 신뢰성

그렇다면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아닌 기계적 메커니즘에 신뢰성을 담아낼 순 없는 걸까?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가상 통화인 비트코인(Bitcoin)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기술인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공공 거래 장부 시스템이다. 중앙서버나 관리자 없이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된다. 사람들의 거래 내역을 국가 기관이나 은행 서버, 전산망에 보관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가 P2P 형식으로 보관하고 저장한다. 데이터 거래기록을 적은 블록들이 하나의 긴 체인으로 연결되면 10분에 한 번씩 거래 장부 검사와 갱신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는 블록체인 시스템에 접속한 사용자들의 컴퓨터가 일제히 동원된다. 이때 사용자 과반수가 가진 데이터와 일치하는 장부만이 정상 장부로 공인된다. 거래 내역이 확인되면 하나의 블록이 형성되고, 기존 블록체인 뒤에 붙는다. 이 작업이 반복되면서 거래가 검증되고 블록은 계속 늘어난다.

장부 조작과 이중 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체 사용자의 절반이 가진 컴퓨터 계산 능력을 조작자가 능가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그에 비해 부정 거래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보잘것없다. 어지간히 미친 억만장자가 아니고선 조작의 동기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블록체인은 인류의 기술사를 통틀어 신뢰성 문제를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전환한 최초의 시도다. 가상화폐의 거래 기록 장부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신뢰성이 작용하는 모든 문제에 응용될 수 있다. 선관위의 투표 관리에서 메일링과 메신저 서비스, 컴퓨터 백신, 신분 확인, 진품 증명, 땅과 건물의 소유 및 거래 기록, 각종 세무 기록, 등기소, 주식시장, 투자은행에 이르기까지 응용범위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중 기술로 하방(下方)된 블록체인

소수 재벌이 온갖 형태의 사회적 부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선 블록체인 기술의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의 정보가 저들의 장부에 쌓여 부의 독점이 연장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중앙집권적 장부 권력에서 벗어날 장치가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능한 많은 사람이 그 장치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공개된 블록체인 플랫폼들은 아주 잘 훈련된 개발자가 아니면, 운영은 고사하고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블록체인 2.0 기술을 고도로 구현해서 ‘이종의 인터넷’이 발명됐다는 찬사를 받은 ‘이더리움(Ethereum)’조차도 어렵기로 치면 ‘끝판왕’이다. 이대로라면 전위적인 개발자 그룹의 특출한 실험일 순 있어도 사회적 파급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블록체인이 신뢰성 문제를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전환한 점은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매혹적인 기술로 거듭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전통적 개념의 정부와 은행을 와해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의 혁명적 잠재성을 폭발시키려면 대중 기술로 하방(下方)된 블록체인이 필요하다. 모두가 코딩어를 배워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고 운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기술의 가능성에 흥미를 느낀 누군가에게 자발적 학습(독학)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되어야 한다. 프로그래머들이나 관련 업계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이 기술의 가능성에 힘입어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시도하려는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끌어내 볼 만하다.

블록체인OS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최용관. 최용관 제공
블록체인OS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최용관. 최용관 제공

블록체인 개발자가 된 노동운동가

한국의 ‘블록체인OS’에서 올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시만텍 블록체인’에 의미심장한 일성(一聲)을 기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플랫폼은 일반인들도 블록체인 기술을 쉽게 시도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시만텍 블록체인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들이 바라는 사회에 대한 비전이 결과물에 충실히 담길 수 있다면, 그 뜻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도 더 많이 모일 것이다.

블록체인OS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최용관은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에 걸쳐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했던 이다. 개발자로서 그의 경력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사이에 시작됐는데, 벤처기업 ‘와우프리커뮤니케이션’에서 일하며 독학과 실무로 쌓은 실력이었다. 이 시기에 정보 공유 프로젝트인 리눅스(LINUX), GNU, P2P에 깊이 경도되었다. 노동운동과 함께 견지해온 방향성을 정보통신업계에서도 꾸준히 이어가고자 했다.

2015년 국정원 RCS 해킹 프로그램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배포된 오픈백신 프로젝트도 최용관이 대표활동가로 있던 P2P재단코리아의 노작이었음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오픈백신의 갱신과 관리 운영은 P2P 네트워크로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시스템을 강력한 컴퓨터 백신 체제로 운영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가 2013년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한국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이 출현했음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장부(DB)를 독점한 권력으로부터 공공의 정보를 되찾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의미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녀야 했던 시절에 그는 뼈아프게 절감했다. 이 나라에서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거의 없었다. 그의 이름은 백신 프로그램에 입력된 감시 대상 명단처럼 취급됐다.

시대의 독학자들이여 응답하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삼성전관 공장에서 노조를 조직하려 했었다. 노동자들이 롤러에 끼여 다치고 돌연사로 쓰러지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던 곳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노동자들끼리 조직화해야 했다. 법이 보장하는 노조가 조직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가 사측에 알려지자마자 온갖 고초를 당했다. 회사에서 해고된 뒤에도 삼성의 지속적인 방해로 일할 수가 없었다. 멀쩡히 취직한 회사에서도 삼성의 전화 한 통이면 쫓겨났다. 첫 직장이 있었던 수원 지역에서는 회사를 떠난 뒤에도 늘 미행이 따라붙었다.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1993년에 들어간 서울 신도림동 사카린 공장은 삼성의 영향력이 닿지 않던 예외적인 곳이었으나, 24시간 맞교대 근무에 월급도 형편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느꼈던 막막한 절망감이야말로 중앙집권적 독점 사회의 한복판이었다. 거기서 벗어날 다른 세상이 없었다.

2010년대의 대한민국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른 세상에 닿기 위해선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지만, 아직도 준비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이 시대에 도착한 블록체인 시스템도 일단은 멍석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에게 몰랐던 것을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 그리하여 더불어 행복하게 살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독학자들이여 부디 응답하라.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공동기획: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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