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와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 아메리카)는 모두 4년 주기로 자리잡았지만 유로는 올림픽 개최년도에, 코파 아메리카는 올림픽 한 해 전에 열려 같은 해에 열릴 수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코파 아메리카가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를 개최하면서 두 대회가 함께 열리는 독특한 해가 됐습니다.
‘축구의 대륙’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유럽과 남미 대륙의 최강자를 가리는 두 대회가 한 해에 열리는 데다 개최 기간까지 겹치니 자연히 흥행 대결 구도도 형성됐습니다. 이를 두고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은 “유로가 화려한 최고급 호텔의 뷔페라면 코파 아메리카는 구수한 감자탕”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이끄는 나라들이 모인 유로, 수십 년이 흘러도 감칠맛 잃지 않는 코파 아메리카에 대한 적절한 비유입니다.
지난달 27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는 코파 아메리카 대회가 칠레의 우승으로 끝났고, 지난 11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열린 유로 2016 결승전도 포르투갈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유로 뷔페’와 ‘코파 감자탕집’의 간판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이제 그들이 보여준 맛을 돌아보고 평가해 볼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집 음식이 더 맛있었나요?
“이번 장사 대박”을 외치는 두 집
간판 불을 끄고 계산기를 두드린 ‘유로 뷔페’와 ‘코파 감자탕집’ 사장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우리 집 음식은 맛있었고, 올해 장사도 대박”이라 외쳤습니다. 유로를 개최한 유럽축구연맹(UEFA)의 테오도르 테오도리디스 임시 사무총장은 지난 9일 대회 수익을 공개하며 “확장된 규모만큼 큰 성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공개된 유로 2016의 총수입은 역대 최다인 19억 4,000만 유로(약 2조4,900억 원), 이 중 순수익은 8억 3,000만 유로(약 1조 625억 원)이었습니다. (▶유로 2016의 빛과 그림자)
코파 아메리카는 평균 관중 수를 들어 ‘대박’을 주장합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까지 경기당 평균 46,199명의 관중이 몰렸는데, 이는 지난해 열린 칠레 대회의 평균관중 25,233명에 비해 80%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사상 최초로 북미 대륙에서 연 대회라 우려가 많았는데, 곳곳에 퍼진 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들과 미국 내 축구팬들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이마르(24·FC바르셀로나)의 불참, 브라질·우루과이의 조별예선 탈락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있었음을 염두에 두면 더 놀라운 기록입니다.
메뉴 늘린 뷔페, 재료 늘린 감자탕
하지만 이 성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두 대회 모두 올해 본선 참가국을 늘렸지만 그 취지와 방식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기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을 늘린 유로의 경우 경기당 평균득점 2.12골을 기록하며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4개 팀이 이룬 한 조에서 3위만 거둬도 토너먼트에 갈 수 있으니 약체들은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꺼내 들었고, 결국 대회의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뷔페의 메뉴 수를 늘렸지만 전체적인 음식 맛은 떨어진 셈입니다. 물론 첫 본선 진출에 8강에 진출한 아이슬란드처럼 기대 이상의 맛을 낸 팀도 있었지만(▶관련기사) “이 집 음식 맛 예전 같지 않더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4년 뒤 유럽 각지에서 열릴 ‘유로 2020’ 운영 방식에 대해 아무래도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미 10개국에 북중미 6개국을 초청, 16개 팀으로 본선을 치른 코파 아메리카는 기존 12개국 체제일 때보다 훨씬 공격적이면서도 다양한 축구 스타일이 돋보였다는 평가입니다. 수치상으로도 경기당 평균득점이 2.84골로 앞선 두 대회 (2011년 2.08골, 2015년 2.27골)와 비교해 크게 는 데다 유로 2016(2.12골)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습니다. 예전에 팔던 감자탕에 새로운 재료들을 추가해 더 풍성한 맛을 낸 셈이죠. (▶코파 아메리카 흥행 비결 셋)
최정상급 셰프들 ‘같은 눈물, 다른 의미’
두 대륙을 대표하는 스타 셰프들의 희비도 엇갈렸습니다.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국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29·FC 바르셀로나)와 유로 우승국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와 이야기입니다.
둘 다 결승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의미는 전혀 달랐죠. 메시는 지난달 27일 열린 칠레와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한 뒤 눈물을 쏟았습니다. 승부차기 실축으로 패배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는 자책감과 코파 아메리카 우승의 한을 풀지 못한 아쉬움이 한 데 모인 눈물일 겁니다. 메시는 이날 눈물의 퇴장을 끝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벗기로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대회가 끝난 뒤엔 ‘범죄자’의 낙인까지 찍혔습니다. 지난 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법원으로부터 탈세 혐의가 인정돼 징역 21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강력 사건 이외의 범죄로 2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초범에게 형 집행이 유예되는 경우가 많은 스페인에서 교도소에 가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간 쌓아 온 명성엔 큰 흠집이 남은 셈입니다.
호날두는 유로 결승에서 두 번 울었습니다. 전반 부상 교체 아웃의 절망감에 한 번, 우승의 기쁨에 또 한 번 눈물을 쏟았습니다. ‘짐승남’호날두의 뜨거운 눈물은 ‘유로 뷔페’ 마지막 접시에 감동의 맛을 더한 확실한 재료였습니다. (▶[차두리] 눈물의 호날두, 간절함은 통했다)
종갓집과 전통 맛집의 몰락
잉글랜드의 종갓집 자부심은 유로 2016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구긴 체면을 살려보려 했지만 조별리그서부터 웨일즈에 2-1 승리를 거뒀을 뿐 러시아, 슬로바키아와 비기며 고전했습니다. B조 2위로 진출한 16강에서는 돌풍의 팀 아이슬란드에 1-2로 지며 대회를 마감했죠. ‘캡틴’웨인 루니(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건재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해리 케인(22·토트넘), 제이미 바디(29·레스터시티), 라힘 스털링(21·맨체스터시티)등이 가세해 조심스레 우승 후보로도 점쳐지기도 했던 터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선수들의 정신력과 로이 호지슨(69) 감독의 전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일각에서는 잉글랜드의 탈락을 놓고 ‘다른 형태의 브랙시트(Brexit)’란 표현도 나왔습니다.(▶나흘 만에 또 유럽탈퇴?)
코파 아메리카에선 수십 년 째 최고의 맛을 자랑했던 ‘전통 맛집’ 브라질이 몰락했습니다. B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 조 3위에 머물며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건 무려 29년만의 일. 페루와의 조별리그 최종전 오심 논란과 간판 네이마르의 불참 등 악재를 감안하더라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사건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꾸준히 들어오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맛을 잡치게 되고, 그간 쌓아 온 명성도 잃어가는 법입니다. (▶둥가 브라질 감독, 결국 경질)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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