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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을 위해, 잠시 조성진을 잊자

입력
2016.07.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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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 후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 후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지난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우리 음악계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다. 주요 일간지들의 1면에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머리기사로 소개되는 드문 풍경이 벌어졌고, 유명 연예인들의 스캔들 정도는 되어야 오를 수 있다는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공연 시작 3, 4개월 전에 미리 예매를 시작해도 다 채울 수 없었던 예술의전당의 2,500여 관객석은 예매 시작 1시간도 안돼서 매진되는 이변이 속출했다. 급기야 같은 날 앙코르 공연이 한번 더 편성되는 전례 없는 일도 벌어졌으며, 그가 발매한 음반 역시 2000년에 나온 조수미의 앨범 이후 15년 만에 최단기간 10만장에 도달하며 저물어가던 CD 시장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계에서 스타의 등장은, 한 번의 콩쿠르 입상에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무대를 통해 음악적 평가를 얻으면서 이뤄져왔다. 따라서 한국 클래식 스타의 인기는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70년 런던 ‘페스티벌홀’에서 영국 무대에 데뷔한 후 ‘동양에서 온 마녀’로 소개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그랬고, 90년 1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에 등장해 전 세계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한 9살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또한 그런 경우였다.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 격찬한 소프라노 조수미도 86년 이탈리아에서 세계 무대에 데뷔하며 그 인기가 한국으로까지 밀려왔고, 같은 시기 활동한 소프라노 홍혜경 역시 그 인기의 배경은 한국이 아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였다. 이어 나타난 신동 첼리스트 장한나도 94년 로스트로포비치가 주도하는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녀가 더욱 유명해진 건 해외 메이저 음반사를 통한 음반 발매 때문이었다.

한국의 자생적인 클래식 스타는 2000년대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롱-티보 콩쿠르’에서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하며 알려진 임동혁은 곱상한 외모와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급격히 인기를 모으며 ‘오빠부대’를 이끌고 나타나, CD 시대 팬덤 문화를 이끈 첫 주인공이 되었다. 여학생들이 주축인 이 팬덤은 한 포털 사이트의 팬 카페 회원 수가 4만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는데, 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아티스트와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최초의 인터넷 유저들이었다.

임동혁에 이어 나타난 클래식 스타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었다. 그는 2004년 한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비록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닌 그의 굴곡진 삶을 다룬 휴먼 프로그램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대중들로 하여금 고정된 시선이 아닌 신선함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인생 스토리에 머무르지 않고 능력 있는 젊은 음악도들과 합심하여 ‘디토’라는 앙상블을 결성하며 비올라가 가진 한계점을 보완했고, 신선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젊은 클래식 팬들을 끌어들이는데 일조했다.

이후 나타난 조성진은 리처드 용재 오닐 이후, 열정을 바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던 클래식 팬들 앞에 1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반가운 스타였다. CD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디지털 음악 시대가 도래하는 길목에서 만난 그를 클래식 팬들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긴 것도 놀랄 일만은 아니었다.

지난 15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티켓을 미리 구하지 못한 팬들이 로비에서 조성진 연주 중계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지난 15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티켓을 미리 구하지 못한 팬들이 로비에서 조성진 연주 중계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조성진 신드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그의 인기몰이에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임동혁, 리처드 용재 오닐을 거치며 한층 젊어진 이 시대의 팬들은, 이전 데스크톱 세대들과는 다르게 모바일폰로 무장한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들이었다. 이들은 신문, 방송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 의존하던 이전 팬들과는 달리, 수동적인 정보의 흡수에 머무르지 않고 SNS를 통해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며, 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놀라운 정보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이 SNS야말로 조성진 신드롬을 만들어낸 새로운 주역이다. 이 커뮤니케이터들은 조성진 수상의 가치와 그들이 생산해낸 뉴스들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으로 끝없이 실어나르며 자신이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를 일반에게까지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크게 불어난 인기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시장에서 한 명의 스타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산업의 중흥을 이끌 정도로 위력적이지만, 일방적으로 스타만 쫓는 행태는 음악에서의 조화와 균형을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 또한 그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연주자가 음악 활동을 해나가는데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막강한 위력을 가진 SNS가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낸 스타를 벨 수 있는 양날의 칼로 돌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미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스타들은 인기의 대가로 이전에는 없던 사생활의 노출이라는 불편까지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연주자들이, 대중의 관심에 의해 얼마나 쉽게 사라져 갔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대중으로부터 받는 관심과 기대의 중압감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클지 모른다. ‘피아노의 여제’로 불릴 정도의 카리스마로 유명한 ‘마르타 아르헤리치’조차 온전히 혼자 받아들여야 하는 연주회의 중압감을 못 이겨 78년 이후 리사이틀 무대를 떠나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나 실내악 무대에만 오르고 있다. 소위 ‘3대 콩쿠르’를 모두 제패한 유일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조차도 리사이틀 무대를 등지고 지금은 주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 등이 이를 방증한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들과는 달리 클래식 스타들은 그들의 인기와는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이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그들의 내면으로 침잠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결실에는 환호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충분히 차고 여물 동안 기다리고 인내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랜만에 찾아낸 우리의 빛나는 보석이 쉬이 빛을 잃지 않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비결일 것이다.

이상민 워너뮤직코리아 클래식 마케팅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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