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까지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하며 프로 선수들의 참가를 원천 봉쇄해 왔다. 이러한 IOC의 방침과 1930년부터 시작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의 등장은 올림픽 축구가 관심을 잃어가는 원인이 됐다. IOC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프로축구 선수의 올림픽 참가를 허락했다. 단, 유럽과 남아메리카 축구연맹에 소속된 국가의 선수 중 월드컵에 참가한 이력이 있는 선수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후 1987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테니스를 1988년 서울 올림픽 종목으로 다시 채택하고 프로들의 참가를 승인하면서 프로 테니스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했다. 또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농구에서 미국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등의 NBA 스타플레이어들을 총동원해 ‘드림팀’을 결성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프로축구 선수가 처음으로 참가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국가는 그 해 유로1984에서 우승하며 유럽의 강자로 등극한 프랑스였다. 유로1984 우승 이후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미셸 이달고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앙리 미셸의 프랑스 대표팀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프로선수들에게 문이 열린 이후에도 최고의 축구선수를 올림픽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3세 이하 선수만 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올림픽 축구는 유럽 주요국의 프로리그가 시작되는 시점에 대회가 진행되며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 차출 요청에는 소속팀이 반드시 응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스타 선수의 소속팀이 올림픽 차출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황금세대를 결성해 대회에 나섰던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세계적인 강호들의 금메달 기록은 많지 않다. 특히 브라질은 매번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브라질은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에서 한국을 3-0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지만 멕시코에 패해 은메달에 머물러야 했다. 브라질이 배출한 세계적인 축구스타 네이마르(FC 바르셀로나)가 자국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출전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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