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아, 이거 해도 너무하네….”
현장에 도착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한숨과 탄식이 번져 나왔다. 지난 8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진행한 ‘동아시아사 교원 현장 연수’에 참여한 30여명의 선생님들이 당도한 곳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서남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쌍성(雙城)의 승은문(承恩門). 1932년 지청천 장군의 한국독립군과 고봉림(考鳳林)이 이끄는 중국 길림자위연합군이 합동으로 일제를 공격, 승리를 거뒀던 쌍성보전투의 현장이다. 화력이 우세한 일제의 반격으로 점령한 지 반년도 채 안되어 다시 빼앗기곤 말았지만, 당시 쌍성이 만주를 장악해가고 있던 일제의 물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쾌한 승리였다.
제 각각 놀던 조선과 중국 양측의 독립세력들이 이 전투를 계기로 일제를 공통의 적으로 여겼다는 점도 중요하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교수실장은 “쌍성보 전투는 승리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 이후 조선과 중국이 무장투쟁 연합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뜻 깊다”고 설명했다.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동북인민혁명군이 만들어지고 이 혁명군은 곧 동북항일연군으로 발전됐다. 실제 중국 정부가 만주지역 항일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하얼빈에 세운 ‘동북열사기념관’엔 항일연군에 가담한 조선인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다. 승은문은 이런 역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버스 문이 열리자 채 내리기도 전에 승은문 주변에서 지린내가 진동했다. 정문 양 옆에는 어디서 가져다 놓은 것인지 모를 사자상까지 있었다. 사자상은 대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승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식물이다. 건물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해주는 표지석이나 명패 같은 것도 없었다.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것은 광고물이나 선전 벽보였다.
이런 흉물스러운 모습은 하얼빈역 구내에 위치한 안중근열사기념관과 묘하게 대조됐다. 이 기념관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으로 급진전됐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의거 현장에 표지석 정도라도 세워달라”고 요청하자, 중국은 아예 역 구내에 있던 VIP 대기실을 개조해 안의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년에는 기념관 규모를 5배나 늘릴 예정이라 한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조처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조선과 함께 했던 항일 투쟁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쌍성보전투도 조선과 중국의 성공적 연합작전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기억이다. 실제 항일연군을 기념하는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 입구에는 시 주석이 보낸 대형 화환이 자리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입장 전에 선글라스를 벗고 옷매무시를 여미는 등 예의 갖출 것을 요구하는 몇 안 되는 기념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승은문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김정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우리 교과서에 사진까지 실려 있는데 너무 관리가 안되어 있어 속상하다”면서 “이 곳의 의미를 얘기해주는 설명문이라도 우선 붙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얼빈=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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