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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칼럼] 소비자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16.08.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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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도 전기요금 무서워 에어컨 못 켜

경쟁력 위해 국민이 언제까지 희생하나

소비자 권익보호도 정부의 중요한 책임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무더위가 닥친 올여름은 에어컨 없이 밤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간헐적으로 전해지는 태극전사들의 금메달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무더위가 몰아쳐 와 온몸을 휘감는 잔인한 여름이었다. 우리 국민을 더욱 괴롭힌 것은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걱정이었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켜지 못하고 낮은 물론이고 밤에까지 무더위에 시달려야 하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드문드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고쳐야 한다는 국회 논의가 있기는 했으나, 이 문제가 국민 피부에 이토록 강하게 와 닿은 것은 올해가 처음일 것이다. 누진체계의 최고단계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에어컨을 많이 켜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라는 어느 관리의 무심한 발언은 가뜩이나 더위에 축축 처지고, 흘러내리는 땀에 지친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기업에 대한 규제를 혁파하기 위한 ‘대못 뽑기’는 형식적으로나마 두세 차례 있었으나 일반국민, 즉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가정용 전기는 누진제도가 아니더라도 산업용 전기보다 비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소비자들이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철강이나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반덤핑 또는 보조금 상계 관세조치가 늘어나고 있다. 이 또한 소비자 권익 측면에서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국제통상’ 강의에서는 학기 초마다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관심과 대화를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해 통상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풀어 나간다. 그 중의 하나가 “만약 내일 조간신문에 유럽에서 수입한 필립스 면도기에 대한 한국정부의 반덤핑 조사결정에 관한 기사가 실린다면 여러분은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이다. 몇몇 학생은 당황해서 허둥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질문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전후좌우의 맥락을 이해하면서 올바른 대답을 한다. 남학생의 경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여학생의 경우 아빠나 남자친구를 위해서 필립스 면도기를 구입하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만약 유럽산 제품이 덤핑가격으로 한국에서 팔린다면, 그만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듯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합리적이다. 같은 품질이라면 보다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는 게 자신의 후생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현대차나 삼성핸드폰이 만약 국내보다 미국ㆍ 유럽에서 더 싸게 팔리고 있다면 우리 소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이 한국제품을 한국 소비자들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이는 한국 소비자들이 이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책이 이제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위의 예에서 보듯 아직도 실생활에서 적잖이 찾아 볼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조만간 맞게 될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처럼 여기저기 고쳐야 할 점들이 아직 많다. 물론, 전기요금, 덤핑 등에 대해 소비자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정책은 실로 매우 복합적 사고를 요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기업활동과의 관계 속에 생겨나서 조금씩 변용돼 온 것이라면, 기업 및 수출경쟁력, 고용에의 파급효과, 대기업과의 공급계약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생사 문제 등 실로 다양한 고려사항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전기요금 누진제에서 드러났듯, 명백하게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는 정책은 과감히 수정해 마땅하다. 대통령이 약속한 뽑아야 할 대못은 기업활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소비자들의 권익보호 또한 책임 있는 정부의 매우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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