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숙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린다. 향은 곧 고향의 기억이 되었고 그의 대표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연결된다. 이후 많은 학자들은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불렀다. 흔히 향수의 미학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이 프루스트 현상을 사례로 자주 든다.
지난주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이 국감스타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국감장에서 교육감을 향해 'MS 오피스를 왜 MS에서 샀냐고' 질타하며 '사퇴하세요'란 말을 내뱉었다가, 온라인에서 누리꾼들의 갖은 조롱을 산 것이다. 그 의원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건 그녀가 '국가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 원장시절, 법인카드(개인카드 아님)로 고가의 명품 에르메스 넥타이와 아닉 구딸 향수를 마구 사들인 일이다.
아닉 구딸은 뛰어난 패션모델이자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그녀가, 조향사가 된 건 그녀의 표현대로 '소명'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내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헤어졌고, 카미유란 딸과 혼자 남았다. 사랑의 상처는 컸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재활을 시작한다. 사랑은 언제나 가장 절실하게 구하고 찾는 자에게 오는 법. 젊은 시절의 연인과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유년 시절 그녀는 과자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따스하고 달콤한 향을 자주 접했다. 다양한 쿠키와 초콜릿의 향기, 갓 구운 과자들이 토해내는 온축된 향은 그녀를 코를 행복하게 간질였을 것이다. 그녀의 불행한 삶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단련된 코는 조향사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과자가게에서, 수많은 과자들을 진열하며 그 방식을 배웠던 그녀는 스킨케어 제품과 향수를 만들어 타인들에게 보여줄 때도 이 경험을 이용했다.
"내 손가락은 어린 시절 아빠의 과자가게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소환해내요. 그곳에서 나는 초콜릿을 정리하면서 손으로 할 수 있는 감각들을 배웠어요.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들을 보여주듯, 크림을 일일이 가방에 담고 일일이 손으로 그 내용물을 써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수기로 자신이 개발한 향의 이름과 재료를 썼다. 그녀는 최상의 조향사가 되기 위해 7년을 훈련했다. 각 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결합되면 또 다른 기억을 환기시킨다. "마치 결혼식의 부케처럼, 희귀한 자연에서 추출한 에센스를 모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작곡하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향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향의 변화인 노트(note)를 섬세하게 개발하는 것이다.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로 향은 '음악'과 같다는 자신의 철학을 보여준다. 향은 인간의 인상을 작곡한다. 작곡이란 행위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대기업에 속해 있는 조향사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향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손길이 배어나고, 마치 한땀 한땀 바느질한 견고한 수트 같은 비스포크(bespokeㆍ맞춤 제작) 향수를 만든다는 건 다양한 제약 조건에 걸려있는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다. 독립 조향사들에게 향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인간을 '독립'시키는 일이며, 실크처럼 부드러운 기억의 표면을 가진 향을 통해, 내 생에 힘을 북돋워내는 일인 것이다.
향은 한 인간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나아가 향은 한 인간의 지상에서의 삶을 집약해준다. 향은 실처럼, 하늘로 피어올라, 천국에서 지상의 모습을 직조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 지상에서의 갖은 탐욕과 권력을 위해 막말을 내뱉는 자들은 우리가 별의 먼지였으며, 언젠가는 지상의 향이 빚어낸 옷을 입고 돌아갈 본향이 있는 존재임을 망각한 자들임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