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지난 2014년 말 청와대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박관천 전 경정(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수사 과정에서 했다고 보도된 말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세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며 이 발언이 ‘황당 발언이 아닌 사실이었다’며 재조명받고 있다. 이 사안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의 요소뿐 아니라 아침드라마나 궁중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통속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게다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이화여대의 특혜는 평소 뉴스에 관심이 많지 않던 젊은 세대까지 분노하게 했다. 뉴스 소비가 급증하자 그동안 진영 논리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기사를 쓰던 언론사들이 오랜만에 같은 방향에서 특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언론사들이 정권에 대한 비판 보도를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씁쓸하다. 인사 때마다 펼쳐본다는 ‘수첩’의 정체, 이 정권의 진짜 실세가 누군지 모두 궁금해했지만 정권이 한창 서슬 퍼럴 때는 제대로 보도하는 곳이 드물었다. 2014년 말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지만 문건이 없었던 다른 언론사들은 후속 보도를 할 수 없었다. 세계일보는 세무조사까지 당했다.
지난해부터 언론사들의 디지털 혁신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케이스다. 이 회사는 제프 베저스의 인수 후 디지털 역량 강화에 힘써 트래픽이 2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이 많이 보도됐고, 이에 따라 브랜드 가치도 많이 향상됐다. 하지만 최근 NBC 방송의 내부자가 트럼프의 성추문 발언이 담긴 특종 영상을 여기에 넘긴 것은, 트래픽 증가 때문은 아니었다. 이 언론사가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헤쳐 왔기 때문이다. NBC 내부자가 ‘우리 방송사는 특종감을 갖고도 뭉개고 있지만, 워싱턴포스트라면 반드시 보도해 줄 것’이라고 신뢰할 정도였던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여러 언론사들이 특종을 내놓고 있는데 유독 JTBC의 보도가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유통되는 현상도 비슷한 문제라 본다. JTBC는 최근 3년간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가 수직으로 상승한 국내 언론사다. JTBC 역시 카카오, 페이스북 등과 함께 다양한 디지털 혁신 시도를 했지만 아직은 전통 방송사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사안을 외면하는 동안 우직하게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 한 것이 시청자와의 신뢰를 형성했다. 어떤 방송사는 메인뉴스는 그대로 둔 채 소셜미디어 계정에서만 젊은이들에게 소구하는 내용과 형식을 시도해 인기를 끌기도 했고, 어떤 신문사는 본지와 페이스북을 전혀 다른 톤과 매너로 운영하면서 수치적으로 급상승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를 통해 각 언론사 자체의 신뢰도와 가치까지 상승했는지는 의문이다.
국내 언론사들이 다양한 혁신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국가와 시민의 미래를 위한 아젠다 제시 등 언론 본연의 역할을 통해서 얻는 신뢰와 결합해야만 진정한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너무 늦게 이슈가 된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그런 나는 뭐했나’ 매일 반성하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