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펴낸 지가 벌써 12년이나 됐다.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매뉴얼’ 같은 환경 책을 찾다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선배의 도움으로 발굴한 책이었다.
1935년 출생한 저자는 우리가 쓰고 마시는 전기와 물, 쓰고 버리는 쓰레기가 모두 ‘에너지의 산물’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평범한 일상을 빗대어 묻는데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용한 전기와 물, 쓰레기를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해 기록하는 ‘환경 가계부’를 써 보라며 그 방법도 일러준다. 대학 강의와 오폐수 문제, 생활 유해물질 분야를 다루는 책도 여러 권 출간한 전문가였지만, 이 책에서는 다정한 외할머니처럼 살림하는 재미와 그 의미를 전수하고 있었다.
더러 나오는 인명과 지명의 사투리 발음이나 구어체로 번역 품이 꽤 들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온실가스 계산법이나 환경 용어, 현황, 실태를 일일이 감수하고 따로 주석을 달아준 번역자이자 감수자인 환경연합 환경교육센터의 열정페이가 잔뜩 지불된 책이다. 나도 흥분해서 ‘초짜’ 출판사의 첫 책이지만 과감하게 초판 부수로 2,000부나 찍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출판사 보관용으로 한 권을 겨우 남길 정도로 숨은 독자들의 느리고 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알뜰하게 다 판매돼 나갔다.
결혼생활 1년 차에 혼자 일하는 출판사를 열었던 나는 당시 무한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살림’을 자연스럽게 출판사의 키워드로 삼았다. 1996년 한국에 출간된 일본 환경운동가 고와카 준이치의 책 ‘생활 속의 유해물질’을 읽으며 살림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궁금한 게 생기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막 생겨난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으로 쫓아갔다. 새내기 살림꾼인 내게 생협은 도서관이었다. 그곳의 첨가물 적은 비누나 주방세제, 발효식품들, 우리밀 과자와 무늬와 색깔 없이 거칠고 힘없는 휴지 같은 물건들은 도서관에 있는 책 같았다. 성분, 제조법, 시중 제품과의 차이점과 근거를 파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구환경과 생태계의 일원들의 살림 법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생협은 우리 출판사의 산실이기도 하다.
머리와 가슴으로만 지구환경을 걱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생활의 구체적인 실천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개개인이 생태 발자국을 조금 덜 남기고, 국가와 기업이 강과 산을 덜 망가뜨리면서도 얼마든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 만들기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어린이 책 분야로 넓혀가면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다만 더 빠르고 강력해진 자연의 분노와 역습처럼, 독자들의 반응도 빠르고 강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단번에 세상이 바뀌지 않듯 습관도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다행인 건 여전히 환경, 건강, 농업을 새롭게 바라보고 조명하는 원고를 만나면 십여 년 전 자전거에서 쐬던 바람이 느껴진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송영민 시금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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