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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좋은 엄마를 포기할 권리

입력
2017.01.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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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친구나 가족들로부터 “과연 너가 좋은 엄마가 되겠느냐” 하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엄마의 역할에 대한 큰 기대나 포부가 없었기 때문인지 두 아이들과 때론 씨름하면서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나 정도면 괜찮은 엄마 같다고 얘기하니, 나보다 훨씬 헌신적인 엄마들도 자신을 부족하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고 더 헌신적인 엄마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금처럼 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적게 보내는 것에 대해 미안할 이유가 없다”고 응수했는데, 뭔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일하는 엄마들은 사실 항상 죄책감을 느낄 일 투성이다. 일을 너무 헌신적으로 하면,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나쁜 엄마라고 수근거리고, 그렇다고 아이 챙기기를 중시하는 엄마는 그럴 거면 왜 회사를 다니느냐, 역시 여자는 일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며 훈수를 두는 일도 많다. 아이가 자주 아프거나, 친구네 집에 초대받지 못하거나, 숙제나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도 혹시 엄마가 소홀해서는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아빠들은 가정에 소홀하고 일에 열중하면 ‘책임감 있는 가장’이고, 아이를 돌보기에 앞장서면 ‘요즘 트렌드에 맞는 멋진 아빠’라고 칭찬받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하는 엄마는 일을 중시하든 육아를 중시하든 뭘 해도 욕먹는 상황이다.

그런데 뭘 해도 욕을 먹는다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좋은 엄마도 훌륭한 사회인도 적당히 포기하기로 했다. 하나를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나에게 둘 다 너무 소중하다. 그런데 둘 중에 하나라도 잘하려고 하면 우리 사회는 ‘헌신’을 요구한다. 야근도 주말근무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직장인, 아이의 성적과 인성과 교우관계까지 챙겨주는 열혈맘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망가지는 엄마의 건강이나 마음까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헌신적인 직장인이나 헌신적인 엄마가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아이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애정이 때론 아이를 더 옥죄기도 하고, 가족관계를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에게 일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는 사회는 “저녁도 여유도 없는 일상”을 만든다. 일자리가 부족해 일하고 싶다고 아우성인 사람들도 많고, 막상 일을 하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모두 다 헌신적인 직장인, 헌신적인 엄마가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물론 헌신적인 사람들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도 크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두 다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조금 덜 헌신적일 때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평등하고 조금 덜 경쟁적이고 일생활양립이 되는 사회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행인지 나 역시 매사에 그리 헌신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엄마의 역할에 대한 욕심은 일찍 포기할 수 있었다. 안 된다 싶으면 포기가 빠른 나의 성격이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는데 뭐든지 다 잘 할 수 없는 워킹맘으로서는 적당히 포기하는 것도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의 숙제나 준비물을 챙기거나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남편이 아닌 나의 몫이다. 다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나 더 잘하고 싶은 욕심만은 조금 내려 놓고 있다.

엄마가 헌신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도 좋은 엄마를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이에게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어차피 아이들에게 부모란 헌신적이든 헌신적이지 않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엄마는 너희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해줄 거야. 그런데 엄마가 해 줄 수 없는 것은 해 줄 수가 없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의 몫이기도 하고, 네가 아쉬워하는 것이 엄마에게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건 엄마의 몫이고.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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