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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승화] 금기(禁忌)

입력
2017.01.0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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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의례가 있다. 1년 동안 성취하고 싶은 희망사항을 수첩에 빼곡히 적은 뒤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을 한다. 결심은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한 시작이며 도구다. 또한 ‘과거의 나’에 대한 불만족이며 결별선언이다. 진정한 결심은 순간적인 충동이나 모호한 욕망을 초월한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인간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수련하겠다는 자신과의 엄숙한 약속이다. 2017년 나에게 유일한 과업은 무엇일까. 그 과업에 몰입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내 결심을 좌절시키기 위해, 거절할 수 없는 유혹과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이를 극복하고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자신이 열망하는 ‘또 다른 위대한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하나 있다. ‘푸루샤’(purusha)다. 푸루샤는 고대 인도에서 사용하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진정한 자신’이란 의미다. 기원전 6세기 서양에서는 두 가지 다른 인간에 관한 심오한 관찰이 있었다. 소아시아 밀레투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칙을 찾기 위해 눈을 외부로 돌려 ‘자연’을 관찰하였다. 이와는 달리 고대 인도에 새롭게 등장한 상키아(Samkhya)라는 사상을 만든 수련자들은 자신의 눈을 인간의 내부로 돌렸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빛을 찾아 나섰다. 그 빛을 감추거나 어둡게 만드는 자신의 욕망이나 허상을 직시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단절’해야 한다. ‘상키아’는 산스크리트어로 ‘단절’이란 의미다. 상키아 철학자들은 최초의 무신론자였다.

‘푸루샤’는 이전 인도철학에서 ‘우주의 원칙’(리그베다)이나 ‘추상적인 자아’(우파니샤드)였다. 그러나 샹키아 수련자들에게 푸루샤는 ‘인간 각자의 본연의 자신’이다. 모든 인간에게 자신만의 고유하며 영원한 자아인 푸루샤가 있다. 푸루샤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우주의 원칙이나 추상적인 자아가 아니라,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내면의 빛이다. 상키아 철학자들은 자신 안에 숨겨진 푸루샤를 발견하고 발동시키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내면의 빛을 발견하기 위한 영적인 운동를 ‘요가’라고 불렀다.

요가는 인도가 인류에게 선사한 위대한 선물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욕심이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얽혀있어서 푸르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다. 요가는 우리가 흔히 아는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 센터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이 아니다. 요가는 사람들의 근육을 이완하고 강화해주고 불안한 삶에 평정심을 되찾게 해주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는 힐링 운동이 아니다. 요가는 오히려 정반대다. 요가는 자신도 모르게 축적되어 거의 굳어버린 편견과 자아도취적 지식과 습관을 뿌리 뽑아 푸루샤로 대치하려는 영적인 수련으로 시작하였다.

요가는 기원전 2500년에 처음 등장한다. 고고학자들은 1920년대 오늘날 파키스탄의 신드 지방에 위치한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서 기원전 2500년대로 추정되는 인장들을 발견하였다. 이 인장엔 왕이자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통치자가 커다란 뿔 왕관을 쓰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양팔은 양쪽 무릎 위로 가지런히 펼쳐 있다. 통치자 주위에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여 그를 응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인장을 ‘동물들을 다루는 주인’이란 의미를 지닌 ‘파슈파티’라는 이름을 붙여 ‘파슈파티 인장’(pashupati seal)이라고 불렀다. 인도-유럽인의 한 분파인 아리아족이 기원전 2000년부터 러시아 남부에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한다. 아리아족은 기마민족이다. 그 한 갈래는 이란으로 다른 한 쪽은 인도로 이주하였다. 그들에겐 야생마를 훈련시켜 전차를 끄는 견인용 준마로 훈련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이 훈련을 요가라고 불렀다. 요가는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말을 훈련시켜 천리마로 만드는 과정이다. 짐을 끌도록 말이나 소에게 씌우는 ‘멍에’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yoke’는 요가라는 단어에서 파생하였다. 군사적 의미에서 사용되던 요가는 기원전 6세기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요가는 다른 민족의 땅을 침략하기 위한 군마훈련이 아니라 인간훈련이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인 것이다. 기원전 2세기 ‘요가경전’을 집대성한 파탄잘리는 요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요가는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잔물결처럼 요동치는 습관을 조절하는 훈련’이라고.

아무나 요가 수련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 요가 수련에 들어가기 전 수련자가 행해야 할 준비과정을 ‘야마’(yama) 즉 ‘금기’라 불렀다. 금기란 ‘타부의 공간인 숲(林)을 인식하고 자기 스스로 들어가지 말 것을 결심하는 마음’이다. 첫 번째 금기가 바로 ‘아힘사’(ahimsa)로 불리는 ‘비폭력’이다. 아힘사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자신만의 푸루샤를 찾기 위한 거룩한 여정의 시작이다. 아힘사를 통해 랄프 왈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9세기 말 미국을 정신적으로 독립시켰고, 마하트마 간디는 20세기 중엽 인도를 독립시켰다. 아힘사가 2016년 말부터 2017년 지금 이 시점까지 대한민국에 찾아와 우리 민족에게 푸루샤를 찾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먼저 수련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행하지 말아야 할 금기는 무엇인가. 나는 오늘부터 ‘금기’ 목록을 작성해야겠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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