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업계에 무한경쟁이 벌어지던 1990년대. 당시 신문사에 가장 중요한 숫자는 ‘발행부수’였다. 독자들이 직접 구독하는지 여부는 상관 없었다. 그저 총 몇 백만 부를 발행하는 신문사인지가 중요했다. 값비싼 경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무가지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광경이 방송 카메라에 찍혀 보도되기도 했다. 심지어 경쟁사 지국 간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발행부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결국 비용 증가로 이어져 언론사 재정난의 원인이 됐다.
신문사들이 디지털 미디어 세상에 진입한 후에도 역시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쉽게 눈에 띄는 숫자에 대해 과거 발행부수 시절과 같은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스크톱PC 웹사이트 순방문자’를 기준으로 매기는 코리안클릭 순위를 들 수 있다. 트래픽 순위는 디지털 영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지만, 항상 신뢰도 문제가 제기돼 왔다. 게다가 이 회사의 모바일 트래픽은 실제와 상당한 차이가 난다. 대부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네이버, 페이스북 등 자주 사용하는 앱에서 링크를 클릭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수치는 기술적 한계로 집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언론사 경영진이 ‘페이스북 페이지 팬(좋아요) 수’에 집착한다. 이 숫자는 실제 사용자 수는 얼마 되지 않더라도 대규모 광고를 집행하거나 편법을 사용하면 높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팬 수가 20만명이 넘는데 게시물 당 ‘좋아요’ 수는 5개가 넘지 않는 기형적인 페이지도 수두룩하다. 팬 대부분이 허수이고 실사용자는 얼마 안 되는 셈이다.
언론사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페이스북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콘텐츠를 도달시키고, 댓글이나 공유를 통해 소통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이를 측정하는 지표는 팬 수가 아니라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한국어로는 ‘게시물 참여’라고 표시되는 지표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페이스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인게이지먼트’”라며 “언론사들이 팬 수 집착에서 벗어나 인게이지먼트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 인게이지먼트만 잘 보면 될까? 하나의 숫자에 집착하는 태도 자체도 경계해야 한다. 숫자에 집착하면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코리안클릭이 절대 가치일 때 자칭 국내 1위 신문사도 포털사이트에 어뷰징 기사를 하루 종일 송고했다. 국내 미디어 사이트 중 현재 페이스북 인게이지먼트 수치가 가장 높은 큐레이션 매체는 타 매체의 기사나 사진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도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발행부수’에 이어 ‘코리안클릭 순위’ ‘페이스북 팬 수’ 같은 특정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진짜 목표를 놓치는 일이 30년 동안이나 반복되고 있다. 대신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영향력을 크게 높인 언론사들이 어디인지, 그 언론사들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어떤 숫자를 통해 그 목표의 달성 여부를 측정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과도한 숫자 집착에서 벗어나 그 언론사 본연의 목표에 맞는, 정말로 중요한 숫자가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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