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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칼럼] 이재용, 삼성 그리고 대한민국

입력
2017.0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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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국내외 관심 끌어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의문 일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재벌개혁이 긴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런데 특정 개인에 대한 영장 청구와 기각이 국내외 언론에 이처럼 주목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필자도 미국, 프랑스, 스웨덴 등 외국 언론사 10여 곳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제일모직ㆍ삼성물산 합병이나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 때보다 외신의 관심이 더 컸던 듯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여부에 대한 국내외의 큰 관심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재벌, 특히 삼성재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영장이 청구되고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도 역대 삼성재벌 총수를 통틀어 처음이다. 삼성의 창업주였던 고 이병철 회장은 1966년에 발생한 ‘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해 기소도 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9년 삼성그룹 비자금과 불법세습에 관한 특검 수사 결과로 두 차례 불구속 기소는 되었으나, 집행유예만 선고 받았을 뿐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이 담당 판사의 양심과 원칙에 따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배경에 삼성재벌 총수의 ‘사법 특혜’가 있는 것이다. 2009년 삼성 특검 관련 재판에서, 대법원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 발행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판결했고, 이어진 파기 환송심에서 서울고법 형사 4부는 이건희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배임 혐의를 적용하여 유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형사 4부는 가중처벌을 요하는 배임 혐의를 유죄로 변경하면서도 형량은 추가하지 않는 선고를 했다. 죄는 인정하나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결정이었고, 이로 인해 이건희 회장은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 4부의 부장판사였던 김창석 판사는 2012년 이명박정부에서 대법관이 되었다.

이재용의 영장 심사뿐 아니라 향후 재판에서도 법원이 삼성재벌이라는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법이 만민에게 공정하게 적용됨을 보일 수 있을지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폄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삼성재벌 총수는 법의 적용에 예외 대상이 된다면, 이는 법치가 아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것이다.

법원의 독립성과 법의 지배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언론이 보여 준 보도의 논조였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이 흔들리고, 삼성이 흔들리면 대한민국에 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부추기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인터뷰를 요청했던 외신들의 공통적이고 첫 번째 질문도 이런 국내 언론의 논조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국내 언론의 우려가 사실이어도 문제고, 사실이 아니어도 문제다. 삼성그룹의 생존 여부와 한국 경제의 장래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특정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정도라면, 다원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는 작동될 수 없으며, 이런 경제권력의 집중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마저 형해화한다. 그리고 만약 언론이 이 부회장의 영향력을 과장한 것이었다면, 이는 오히려 삼성재벌의 언론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언론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역시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적 운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안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시장경제나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음을 경고했다. 결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을 거치면서 미국의 거대 기업집단들은 해체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원주의와 경쟁에 기초한 미국의 시장경제는 혁신과 진보를 꽃피웠다. 이에 반해, 20세기 초 이후 소수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더 심화된 중남미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위기와 양극화의 반복을 경험했다.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재벌개혁 없이는, 시장경제도 민주주주의도 사상누각이다. 재벌개혁이 한국 사회와 경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경제구조 고도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어떤 정책도 당위론적 주장에 그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ㆍ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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