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시간이 좀 있어서 잠깐 인사 드리러 왔어요’ 같은 식의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사실은 바빠서 시간 내기 힘들었던 상황이더라도 이렇게 말한다. '시간 좀 있어서…왔다’ 라는 설명을 붙이는 것은 상대방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명확히 따지면 그건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대화자를 속이려는 나쁜 의도가 아니라 대화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고운 의도의 말이다.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다. 언어 습관일 뿐이다. ‘예뻐졌다’ ‘대단하다’ 등등 인사 말들과 비슷한 예다. 그런 말을 쓸 때 마지못해 혹은 격식에 맞춰 한다면 빈말이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립 서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표현법은 언어에 따라 차이가 있다. 프랑스 사람들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식으로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실을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감정이나 상황, 생각대로 남에게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대부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의 예로 다시 돌아가서 프랑스 사람들이라면 '시간이 별로 많지 않지만 잠깐 왔어요’ 라고 상황을 솔직히 설명할 것이다. 한국만큼 인간 관계가 예민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 남을 배려한다고 해서 거짓말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겠느냐?
또 지나치게 부풀리는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먼데서 오느라고 고생하셨어요’ 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는 듣기 힘든 표현이다. 번역을 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손님이 먼 곳에서 왔더라도 신경을 안 쓴다. 친구가 멀리 사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운전이라든지 기차를 타는 일이 꼭 힘든 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안 하게 된다. 예상보다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거나 오느라 실제로 고생을 했을 경우에만 한국식으로 인사한다.
핑계를 만들어 내는 일도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자주 접한다. 초대받은 행사에 참석을 못하면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핑계를 늘어놓는다. 프랑스에서였다면 죄송하다는 간단한 말로 끝난다. 개인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화이트 라이(white lie)’라고 부르는 언어적 행위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되기 위한 일종의 합의다. 화이트 라이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화와 언어 습관의 문제인지라 하지 말라는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실, 화이트 라이가 문제가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이 문제다. 세상에는 어디나 거짓말쟁이들이 있고 모든 언어에 거짓말쟁이를 일컫는 말이 있다. 한국말로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하고 프랑스말로는 ‘숨 쉬듯이 거짓말한다’고 한다. 이 두 표현 다 거짓말을 안 하면 죽는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중독처럼 하면 할 수록 더 하게 된다. 생활방식이 돼 버린다.
자기 목표에만 집중하여 거짓말이 수단이 돼 버린다. 그러다 걸리면 걸리는 거고 안 걸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거짓말을 한다. 성실한 삶이 심심한 것 같고 거짓말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차라리 재미를 느끼고 심지어 이익까지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여긴다. 거짓말은 성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 도구가 남을 죽이는 무기가 되더라도 계속 자신 있게 해 나간다. 어디까지 이대로 갈 수 있지 생각할 여유 없이 거짓말만 믿고 직진한다. 결국에는 양심과 이성까지 잃는다.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도 뻔뻔하게 안 했다고 잡아뗀다.
변호사들도 직업상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거짓말인 것을 거짓말이 아닌 걸로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삶의 길을 선택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책임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개인에 있는지? 교육이나 사회에 있는지?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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